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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대왕시대



헤롯대왕 (대략 기원전 73년 탄생, 왕 재임기간 기원전 37-4)

등장

     기원전 63년 로마장군 폼페이우스는 로마에게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페르시아-메소포타미아,시리아-이집트를 연결하는 군사도로 한 가운데 위치, 소아시아와 이집트 사이의 교두보, 동방의 이방인들을 막는 방어벽 역할), 이 지역을 행정구역 시리아에 편입시킵니다 (주요도시 안디옥, 다메섹). 그리고 이스라엘을 동화시킬 목적으로 헬레니즘문화를 이 지역에 유입시킵니다.
     기원전 44전 로마황제 시저가 살해되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팔레스티나에서는 로마의 총독 (Prokurator) 힐칸 2세가 살해되고 (기원전 43년) 귀족들과 장군들 사이에 알력다툼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장군 헤롯이 권력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하스모니아 왕가의 아들 안티고누스가 시리아 파더왕의 도움으로 헤롯을 몰아냅니다.

로마로 망명과 귀국

     그는 로마로 도망가서 거기서 자기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안토니우스와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 "유다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어냅니다. 헤롯은 귀국하여 기원전 39-37에 걸쳐 안티고누스와 전쟁을 하고 승리, 그를 안디옥에서 처형합니다.
     헤롯은 이스라엘로 귀화한 이두메인 출신입니다. 따라서 전통성문제가 그에게는 항상 걸림돌이였습니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37년 하스모니아 왕가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45%의 사두개 제사장들을 처단하고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그는 로마 권력을 뒤에 업은 왕이여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도시를 재건하고 국가재정을 튼튼히합니다.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63-기원후 14) 악티움해전에서 (기원전 31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승리하였을 때, 패한 안토니우스와 교분이 있었던 헤롯은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옥타비아누스로부터 호감을 사 오히려 갈릴리 주위의 몇 도시을 상으로 받습니다.

치세 2기 (기원전 27-13)

     그는 로마권력의 앞잡이, 헬라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헬라, 로마 건축술로 전 영토를 치장합니다. 사마리아를 재건하고 지중해 연안의 많은 도시에 헬라건축물을 세웁니다. 가이사랴 항구도 그리고 후에 마지막 로마항거 거점이였던 맛사다 요새도 이때 만들어집니다. 그는 에스라 느헤미아 시대에 재건되었다가 중간시대에 다시 폐허가 된 성전을 두 배나 더 크게 재건하는 대역사에 착수합니다 (기원전 20년에 시작-기원후 63년 봉헌. 참고 요2,20에는 46년 걸렸다고 나옵니다). 심지어 로도스에 아폴로 성전을 짓고 아텐과 스파르타에 기념물을 세웁니다.
     친로마적인 이런 정책 때문에 디아스포라 (본국에 살지 않는, 지금으로 말하면 교포) 유대인들이 더욱 많이 로마제국의 전 지역으로 퍼질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은 나중에 간접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데 기여를 합니다 (바울이나 유대전도자들은 주로 이들의 회당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치세 3기 (기원전 13-4)

     이때는 후사문제 때문에 피로 얼룩진 정치가 연출됩니다 (마 2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임). 그는 10명의 부인을 통해 많은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아들들이 늙은 자신을 왕위에서 몰아낼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래서 첫 두아들을 기원전 7년에, 셋째 아들은 자기가 죽기 5일 전에 처형합니다.

헤롯사후

그가 죽고나자 팔레스타인 영토는 그의 세 아들에의해 나뉘어져 통치됩니다.
   1) 아켈라오 (왕 Ethnarchen 마 2,22): 그는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했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땅을 다스렸는데 주민들의 심한 반발을 받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청원을 해, 결국 그는 추방됩니다 (기원후 6년). 이후 이지역은 로마의 총독에 (Prokurator) 의해 다스려집니다 (참고 빌라도 총독 기원후 26-36).
   2) 헤로데스 안티파스 (분봉왕 Tetrarch): 그는 갈릴리와 베뢰아지역을 (요단과 사해의 동편) 다스립니다. 성경에는 그냥 헤롯이라고 나옵니다. 그가 세례요한을 죽였고 나중에 빌라도에게 붇잡혀 있던 예수와 잠시 대면합니다. (눅 23,6이하). 그는 헬라문화에 경사되어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신앙과 종교적 감정을 해치지 않고 조용히 통치했습니다. 기원후 39년에 왕위에서 찬탈당합니다.
   3) 빌립 (분봉왕): 요단동편의 북부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예수의 사건와 상관없는 구역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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