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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란 무엇일까요?



I.
    무엇보다도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 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 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계시를 통해서 등등. 하지만 여기에는 기도하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습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서, 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여러 방법 중에 확실하고 안전한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 말씀인 성서를 통해, 성서가 말하는 핵심을 가지고, 여기에서 유추하여 "지금 이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일까"를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II.
     성서는 하나님 말씀이긴 하지만 각 성서의 저자가 처음부터 "나는 지금 성서를 쓰고 있다" 고 생각하고 각 서신을, 복음서를, 혹은 예언서를 적지는 않았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성서가 성서로 확정된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구약은 율법서와 (창, 출, 레, 민, 신) 예언서 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참고 마 5,17). 현재 구약 39권은 주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결정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물론 신약은 없었습니다. 신약은 일반적으로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현재 27으로 확정됬다고 알려집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동방교회는 아타나시우스의 영향으로 벌써 367년에 27권을 정경으로 봅니다 (그는 처음으로 정경 canon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이 정경인지의 여부에 대해선 동방교회에서 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10세기에 가서야 이견없이 27권이 정경이라고 여겨집니다. 라틴교회에서는 일찍이 5세기 초에 27권을 신약성서로 확정합니다. 오뎃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교회는 (특별히 서부시리아 교회에서는) 5-6세기에 아직 '벧후, 요2, 요3, 유'를 정경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리아 교회에선 계시록은 점차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1442년 프로렌츠 종교회의에서 로마 교황청은 이견없이 고대교회의 아타나시우스의 정경목록 27권을 다시 한번 신약성서로 확정합니다. 이처럼 신약성서 27권의 확정은 지역에 따라 편차를 두고 서로 다른 목록들이 존재하다가 아주 후대에 결정됩니다.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바울은 성서를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편지를 쓴 것이 아닙니다. 많일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의 사적인 내용들은 빼고, 더 은혜롭게(?) 자기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세웁니다. 나중에 자기가 세운 교회들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권면할 일이 생겨 방문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대신 펜을 들어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그의 편지가 당시 교회에 아주 큰 감동과 은혜를 끼칩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복음의 핵심이 잘 표현되어 있고, 잘 나타나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필사해서 (요즘 말로 하면 복사해서) 돌려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쓴 편지가 더 없나 서로 수소문해서 모았습니다. 1세기 말엽이나 그 다음 세기 초엽에는 이미 현재 우리가 성경으로 갖고 있는 바울의 편지들이 완결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들은 제일 먼저 신약성서로 확정됩니다. (주후 140 년 이단인 마르시온의 글에 보면 목회서신을 뺀 바울의 편지 10개 거론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쓴 편지 모두가 모아진 것은 아닙니다. 고전 5,9을 보십시오 거기에 보면 이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지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성경이 되는 조건은 (신약성서에 국한해 볼 때) '얼마나 초대교회들에서 많이 읽혀지고 있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나'였습니다. 풀어서 이야기 해보면, 초대교회라는 자유경쟁시장에서 신앙부문의 베스트 셀러의 목록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을 교회회의에서 심의하여 "성경으로 하자"고 정한 것이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회의에서 성서를 성서로 정했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들에 의해 정해 졌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글들은 일차적으로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합니다. 즉, 성령님께서 그 안에 역사하지 않는 글들은 성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회의가 단순히 인간들의 모임이 아니라 성서를 정하는 회의였기에 여기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과정에서 성령께서 인정한 글들 만 성서가 될 수 있었습니다.

III.
     지금까지의 말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성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처음부터 성서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해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고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고 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또 그분은 예언자들을 통해 인간들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돌아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 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은 전 인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원의 사건들을 체험하고 느낍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의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혹은 이들로부터 증언을 들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글을 씁니다 (예를 들면 눅 1,1이하에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 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보면 누가복음의 저자 이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에 대해 여러 사람이 글로 증언하고 있으며 자신도 이를 연대기적으로 기록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은혜로운 글들, 성령께서 역사하는 글들이 나중에 성서로 정해집니다. 사도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회에 속한 우리들은 당시 교회가 정한, 성령님의 역사로 정해진 성서를 "아멘"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이렇게 성서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과 이 은혜의 사건에 대한 고백의 글이다. 그 중에서 성령님에 의해 인정된, 제일 최고의 것을 모아놓은 것이 성경이다. 이 성경에서 우리는 저자들의 체험과 고백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한 것을 성령님께서 골라 성서로 정하게 하셨기 때문에 성서는 각 인간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체험과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어떤 유명인이 자신의 자서전을 어떤 문필가에게 글을 써 달라고 의뢰합니다. 글쓰는 이는 이 유명인을 인터뷰하고 그의 일기나 그에 대한 자료를 보고 자서전을 씁니다. 그리고 나면 그 자서전은 문필가가 쓴 것으로 출간되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의 자서전으로 책방에 나옵니다. 성서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깊은 신앙의 체험을 하고, 그분이 누구 신지를 느낀 한 초대교회 신앙인이 자기의 체험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글을 씁니다. 만약 그 글이 당시 교회에 많은 은혜를 끼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하나님 자신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지면 (교회회의에서 절차를 거쳐) 그 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리워 지는 것입니다.

IV.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 감동이 넘치고 하나님을 잘 고백한 초대교회 당시의 글들이 교회회의를 통해 성서로 정했다면 요즘의 어떤 설교나 신앙의 글들 중에서 그러한 조건을 갖춘 것도 성경으로 추인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논리적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라고 말해야 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정해진 사건은 역사상 오직 한번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66권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아니면 과거에 쓰여진 신앙의 글들이나 설교들 중에서도 아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고, 크게 도움이 될만한 신앙의 체험들을 잘 전달해 주고 고백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와 함께 이런 글들도 같이 읽는다면 우리의 신앙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서란 무엇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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