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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동-무임금? 마태의 상급이해 (마태-6)

머릿글

마태의 믿음이해에 이어 이번에는 마태의 상급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령은 이전과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와 관련된 용어가 무엇인지 알아보면 10회 사용되고 있는 명사 misthos (이 명사형은 막에서 1회 - 9,41, 눅에서 3회 - 6,23.35; 10,7, 요에서 1회 - 4,36 나옵니다), 이의 동사형인 misthoomai 정도입니다. (신약에서 유일하게 마태복음에 2회 나옵니다) 이 단어들의 쓰임을 조사해 봄으로써 마태의 임금, 보상이해가 무엇인지 규명하려 합니다.

몸글

명사인 misthos는 5,12.46; 6,1.2.5.16; 10,41.41.42; 20,8에서 사용되고 있고 동사형인 misthoomai는 마 20,1.7에서 등장합니다.

I.

마태의 상급관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구절은 20,1-16의 '포도원의 품꾼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서 만 나오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여기서 8절에 명사 misthos가 한 번, 1절, 7절에 동사 misthoomai가 등장합니다.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0,1)"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20,7)"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20,8)"

이 비유에서 하나님은 일찍 와서 일을 한 일꾼이나 저녁 때 와서 일을 시작한 일꾼이나 상관없이 같은 임금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 즉,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요 (15절), 노동의 양에 따라, 일을 잘하고 못하고에 (즉 실적에) 따라 상벌하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금은 저녁 때 와서 일을 시작한 일꾼의 입장에서 볼 때 놀람이요, 뜻밖의 사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하셔서 일을 적게한 자들에게 까지도 동일하게 보수을 주시는 분이라는 표상과 관련될 수 있는 유사 구절을 우리는 마태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태에 따르면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에게 똑같이 해와 비를 내리시는 분 (5,45 - 공관복음서 중에서 마태에 만 유일하게 나옴: vgl. 눅 6,35),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시는 분 (9,13 - 마태에 만 유일),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놓아주시는 임금과 같은 분으로 (18,27 - 마태에 만 유일) 묘사되고 있다. 롬 4,4 이하에 보면 (참고 롬 11,6)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 4,5f). 우선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여기서 개역 성경의 '빚' 이란 번역보다는 (원문: kata opheilema) 오히려 표준 새번역의 '보수'나 공동번역의 '품삯', 그리고 RSV의 'as his due'가 문맥상 뜻을 더 잘 나타내 준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지금까지 언급한 마태의 상급관과 비교해 볼 때 업적에 따라 상을 내리시지 않고 자비에 근거해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상급은 바울의 용어를 빌리자면 바로 은혜요 은총인 것입니다.

II.

이상으로 마 20,1.7.8에서 사용된 용어 misthos/ misthoomai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예수님의 산상설교에서도 (마 5-7) 집중적으로 misthos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5,12.46; 6,1.2.5.16).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5,12// 눅 6,23)"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6)"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6,1)"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2)"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5)"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 (6,16)"

여기서는 "... 하면 상을 받는다"는 도식이 기본적으로 전제됩니다 (특별히 5,12.46 에서). 즉 상은 20,1 이하에서와는 달리 즉, 무조건적으로 인간들의 실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해서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그 누가 잘못한 경우에 (구체적으로 "외식" 6,2.5.16) 벌을 이야기하지 않고 "저들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하고 있는 점이다. 즉, 여기서는 상에 대해 말하되, "... 하면 상을 받고 ... 하면 벌을 받는다"는 기본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인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인간을 두 부류로, 즉 이미 상을 받았은 이들과 앞으로 상을 받을 이들로 나누고 있다. 이미 상을 받은 자들은 기본인 방향이 인간들에 정위되어 있는 이들이고, 즉 자신의 행동의 동기가 세상에서 인정을 받으려 하는 자들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6,1.5.16;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6,2). 반면에 상을 받을 자들은 그 방향이 하나님께 향해 있는 자들, 즉 자기 행동의 의의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두는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존을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로 이해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미래에서, 그리고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상을 받는다. 마태의 상급개념에서는 이처럼 미래적이고 피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마 19,28 이하를 병행구절인 막 10,29 이하/ 눅 18,29 이하와 비교해 보면 이것이 더욱 두드러 진다. 마태에서는 제자됨의 보상이 미래적인데 반해 막이나 눅의 구절에는 현재적인 부분이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곳에서 '상'의 개념은 행위에 따른 상급의 의미로 쓰인다고 보기 보다는 (누구나 다 상을 받음으로), "이미 상을 받았느냐", "앞으로 받을 것이냐"는 구분을 통해 인간이 갖고 있는 두 종류의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특별히 5,12.46을 제외한 나머지 구절들에서).

III.

또한 마 10장에서 단어 misthos가 몇 차례 쓰여지고 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1)"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0,42// 막 9,41)"

마 10,41이하는 마 10,40의 (더 나가서 10장 전체의 맥락, 다시 말해 열두 제자의 파송이라는) 빛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지역에 정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aeus, EKK 1/2, 1990, 153) 즉,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방랑하는 제자들을 ( 41절에 따르면 선지자나 의인들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맞아들이는 자들은 종말에 예언자가 혹은 의인이 받는 상을 받게된다. 적은 자 하나에게 (즉 제자; 참고 마 25,31이하)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도 상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앞에서도 말한 것 처럼 여기서는 지역에 정주하여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방랑하는 제자들을 기꺼이 맞이할 것을 촉구하는 맥락에서 '상급'개념이 사용되었으므로 마태에서 지금까지 살펴 본 다른 곳과는 달리 특별히 "행위에 따른 상급"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면 상급을 받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단순히 방랑 제자를 맞아들여 묵게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일로 인해 (냉수 한 그릇) 종말에 비교할 수 없는 큰 상을 받게 된다는 서술은 상급이 업적에 따른 보상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한 은총의 선물이라는 측면도 엿보이게 한다.

마치면서

지금까지 단어 misthos/ misthoomai가 나오는 모든 마태의 구절들을 살펴 보았다. 관찰의 결과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마태에서는 상급의 개념이 한 일에 따라 지불하는 임금이나 보상의 의미보다는 업적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해서 베풀어 주시는 뜻밖의 선물의 의미가 강하다. 다시말해 하나님에게서는 "무노동-무임금"의 모토가 통하지 않는다. 상을 받는 존재인 인간은 세상에서 이미 받았느냐 아니면 피안의 미래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것이냐에 따라 두 종류의 부류로 구분된다 (마 5-6). 경우에 따라서, 예를 들면 10,41 이하에서 처럼 방랑 전도자를 친절하게 맞이하라는 의도로 상급의 개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상급은 업적이나 실적에 따른 보상이라기 보다는 한 일에 비할 수 없는 큰 은혜의 선물이라는 차원이 있다.

그리고 몇 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 처럼 '상급'개념은 닥아오는 하나님 나라라는 복음에 통합되어져 있다고 하는 이론은 (대표적인 학자로 G. Bornkamm, Der Lohngedanke im Neuen Testament, in; ders., Studien zu Antike und Urchristentum. Ges. Aufs. 2, 1959, BEvTh 28, 69-92) 마 5,12를 제외하고는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살펴본 마태의 구절들 중에서 위의 한 구절을 예외로 하고, 그 외의 어느 구절에서도 하나님 나라라는 모티브가 상급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곳을 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관찰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 때문에 어떤 일을 한다는 사고가 마태복음에서는 희박하다. 즉 기본적으로 '상급' 때문에 '순종'한다는 사고를 찾아보기 어렵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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