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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적 배경: U. Luz (마태-3)

시작하면서

먼저 번에는 마태복음에 대한 R. Hummel의 글을 (마태복음 내에서 교회와 유대교 간의 대립, 1963)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의 글인 U. Luz의 마태의 예수이야기 (Die Jesusgeschichte des Matthaeus 1993) 중 일부를 (1.3과 1.4, 21-31쪽) 소개하고자 한다. 이유는 이 부분이 나름대로 마태공동체의 성격을 요약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저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그는 1938년 스위스 Maennedorf에서 출생, 스위스 츄리히와 독일 괴팅겐에서 수학, 1967년 박사학위, 1968년 교수자격시험 통과, 1972-1980 괴팅겐대학 교수, 1980년 이래 스위스 베른대학 교수이다. EKK 주석시리즈로 마태복음을 저술하고 있다. (현재 1, 2권이 나와 있음)

내용

1.3 유대교와 대립하는 마태공동체

최근 마태공동체를 유대기독교적인 공동체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에 동의 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이견들이 있다. 즉, 마태공동체를 율법에 충실한 공동체로 보는 견해 (5,17-19), 혹은 보편주의적으로 개방된 헬레니즘적인 유대기독교로 보는 견해, 혹은 그들을 아직 유대회당 내에 살고 있었지만 이들로 부터 박해를 받는 (23,34-36) 공동체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혹은 그들을 이미 오래 전에, 혹은 직전에 회당과 결별한 유대기독교로, 그래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은 공동체로 보기도 한다. 이에 따라 그 공동체 내에는 이방선교를 지지하는 측과 이를 반대하는 측간의 긴장이 있는 공동체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죽음을 유대인과 그 후손에 돌리는 구절 (27,25), 23장의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강한 비판,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명제-반명제 등은 마태복음이 이방인 출신 기독교인에서 유래되었음을 주장하는 강한 근거가 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1) 유대인들에게 만 제자를 파송하신 예수님 (10,5 이하) vs. 모든 족속을 제자삼으라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 (28,19), (2)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일컫는 호칭의 주요 역할 vs. 이tm라엘을 강하게 부정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13,11-15; 21,41-43), (3) 율법을 옹호하는 말씀 (5,17-19) vs. 예수님의 반명제 (옛 사람에게 말한 바 ...를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 5,21 이하), (4) 모세의 의자에 앉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것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 (23,2 이하) vs. 이어서 바로 나오는 그들에 대한 비판 (23,15-24), (5) 한편으로 마태복음은 독자들이 유대교를 (유대교의 여러 규정들을)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래서 손 씻는 유대교의 규례를 독자들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vs.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그룹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한 데 묶어서 처리 (16,12).

이런한 모순들을 놓고 어떤 이들은 마태복음을 현대적인 논리로 이해해서는 않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누구는 이 모순을 마태의 편집과 기존의 전승 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마태복음을 이방인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 보는 이들은 마태복음 내 친 유대교적인 부분을 기존의 전승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견해의 약점은 마태복음의 저자를 이방인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친 유대적적인 부분을, 그리고 마태의 상황에 맞지 않은 부분을 이 복음서가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을 이스라엘에서 이방인 중심으로 방향수정 중인 복음서로 볼 수 있을까?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이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나는 다섯 가지 테제로 마태공동체의 성격을 나름대로 규정해 보고자 한다.

1. 마태는 유대기독교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많은 전승들은 유대기독교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예를 들면 5,7-9; 12,5 이하; 12,11; 24,20; 많은 마태의 특별자료들) 마태는 '참 정결'에 대해 유대교인들과 논쟁하면서 (15,1-20) 마가처럼 과격하게 율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5,17에서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는 말은 이어서 나오는 예수님의 반명제을 반유대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을 갖고 있다.

2. 마태공동체는 유대회당조직에 더 이상 속하지 않았다. 유대인의 회당을 "저희 회당"이라고 하며 (4,23; 7,29; 10,17; 13,54; 23,34), 마태의 공동체 내에 기독교서기관들이 있었으면 (13,52; 23,34), 마태복음 내에서 회당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6,2.5; 10,17; 13,54; 23,6.34), 이에 반해 성전은 회당과 마태공동체 간의 결별 당시 파괴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뇌리에 긍정적으로 기억되어 있다. (5,23 이하; 17,24-27; 21,13)

3. 마태공동체는 율법을 지키며 살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율법에 대한 최고의 선생이요 해석자이다. 그들은 유대의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 (24,20) 마가에서 (7,1-23) 예수님은 정결법을 거부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에서는 (15,1-20) 그러지 않는다. 물론 마태도 외적인 정결보다 내적인 정결을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결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의 (15,11) 해석부분에서 입으로 들어가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15,17), 마태공동체는 정결법을 지켰으리라 여겨진다.

4. 회당과의 분리는 그리 멀지 않은 이전 시기에 일어났으리라 추측된다. 저작시기는 대략 80-90 년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디다케의 저자이며 아마 벧전의 저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이그나티우스가 마태복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필경 마태를 알지 못하리라 추측되는 누가복음에는 전승사적으로 볼 때 (마태보다) 후대의 어록자료의 발전 단계가 나타난다. 마태복음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으로는 단지 성전 멸망 만이 확인된다. (22,7) 바리새주의적인 유대교와 격렬하게 대립되고 있는 마태복음 내의 정황들은 마태복음이 유대교로부터 분리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5. 마지막 테제는 이방인선교와 관련된 것인데 가장 불확실한 부분이다. 마태복음은 이방선교에 대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으로 끝을 맺는다. 이 명령은 미리 복선으로 깔려 준비되어있다. (2,1-12; 8,5-13; 15,21-28; 21,43; 22,8-10) 이전에 10,5 이하에서 이스라엘에게 만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 중 두 가지가 ("가라", "이방인") 마태복음의 마지막 선교명령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즉 마태는 10,5 이하의 말을 그대로 이용하고, 내용적으로 수정해서 28,16 이하에서 사용한다. 즉 마태는 부활절 이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보내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방인 선교는 마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마태복음 전체는 이를 겨냥하고 있고 이를 계속 주지시킨다.

마지막 다섯 번째 테제와 관련해서 불명확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 째로는 이방인 선교는 마태공동체에게 새로운 과제인가, 아니면 이미 이 공동체는 이방인 선교를 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마태복음 자체로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을 거부하고 그를 죽이고 더 나가 부활의 복음을 수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해 이방인 선교가 제자들의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이것이 마태공동체의 당시 상황인가? 그들이 이스라엘에 국한된 선교를 지금까지 하다가 회당과 그들의 공동체가 분리됨에 따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이 깨어 지면서 이스라엘 선교를 포기한 결과일까? 실제로 성전멸망 이후에 이렇게 결정한 유대기독교 공동체가 있다. 이방인 선교를 시작한다는 것은 점점 이방기독교적인 대교회에 통합되어 감을 의미한다. 이미 마태복음 내에는 이방인 선교가 현재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4,9.14; 비교 13,38 이하) 마태공동체 내에서 혹은 그의 주위에 이방인 선교를 결정한 유대기독교적인 그룹이 있어 마태가 자신의 복음을 가지고 그들 편에 섰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 째는 어떤 이방인 선교를 마태가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수께서 율법과 예언자들을 완전케 하고자 오셨고 마태 공동체가 율법을 지켰다면 마태가 생각하는 이방인 선교란 선교된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싸운 유대기독교인들이나 져스틴이 (Dial 47,2)에서 말하는 이들은 다른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지키게 하고 할례를 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거짓형제, 이단이라고 일컬어 지는 이들이 마태의 가까운 (신학적인) 친척이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은 할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방인 선교의 실제는 마태의 예수전승에서는 명백히 아직 없다. 마태복음이 율법에 충실한 유대기독교적인 분파의 복음서였다면 마태복음이 그렇게 빨리 대교회에 통용되었을까는 숙고해 봐야 한다. '어떻게'는 모르지만 마태공동체는 대교회에 통합되었다.

1.4 마태공동체의 역사 - 개요

마태의 역사를 간단히 언급하려면 여러 가설과 전승사적인 재구성에 의존해야 한다. 이 개요는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의 기능은 역사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른 개요를 유도해 내는 데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태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어록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과 같이 속해 있었다. 어록자료 배후에는 한편으로 방랑하는 전도자, 예언자, 교사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선포로 인해 생겨난 정착적인 공동체들이 있었다. 아마 마태공동체는 그들의 선포로 인해 언젠가 생겨났다. 어록자료와 공통적으로 마태복음에서도 나타나는 유대기독교적인 환경, 둘 간의 신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성 (특별히 인자-그리스도론과 교회론) 그리고 마태공동체에서도 확인되는 급진적인 방랑(전도)자들 등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마태복음이 저술될 당시 마태공동체는 이스라엘에 있지 않고 시리아에 있었다. 이 주장은 4,24에서 이 지명이 언급되는 점, 2,23의 '나사렛 사람'이라는 표현 (이는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나사렛인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15,22에서 두로와 시돈지방에서 만난 여인을 '가나안 여자'라고 부르는 사실 (추측컨대 그곳에 사는 페니키아 주민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그리고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에 의해 마태복음이 시리아에 있다고 언명되고 있는 점 등에 의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시리아의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왜, 언제 이 공동체가 이스라엘을 떠났는 지도 모른다. 성전멸망이 이스라엘을 떠나게 된 동기인지 아니면 복음서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5,11이하.44; 10,17-23; 23,34이하) 이스라엘 내에서의 (유대교와의) 긴장과 박해가 그 이유일까?

유대기독교적인 예수공동체는 유대전쟁 이후에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그들의 선교가 실패한 후 시리아에서 새롭게 방향설정을 한다. 그들은 자신을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의 일부라고 여기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 - 더 나아가 12지파 백성의 핵심으로 -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 중 이방인 선교를 하고 이스라엘에서,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마태의 특별자료 (5,19; 10,5이하)는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선교는 실패하고 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당 밖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은 (유대교로 부터) 적대감과 몇몇 경우에는 박해까지 받았다. 그들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핵심으로 여겼지만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였고 (따라서) 자신을 새롭게 정립해야 했다. 마태복음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의 새로운 자기정립을 위해 일차적으로 쓰여졌다.

마가복음은 어록자료와 달리 공동체 내부의 고유한 전승들을 담지하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왔다. 마가복음은 시리아의, 즉 그곳에 마태공동체가 있었던, (이방기독적) 시라아기독교 공동체의 성경이거나 서방에서, 로마에서 유래한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자신의 공동체의 고유한 전승을 가지고 자신의 고유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마가복음을 고쳐 새롭게 저술하였다. 이와 관련해 '이방인 선교'와 '율법준수' 두 문제가 중요하다. 마태공동체는 이스라엘선교가 실패한 후 이방인들로 방향을 바꾸었을까? 이 당시 시점에서 마태공동체 내부의 의견이 갈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승천한 예수께서 분명한 임무를 주신다: "모든 족속을 제자삼아" (28,19). 율법준수문제에 대한 마태복음의 입장은 이방인 선교 문제보다 덜 분명하다. 기본적으로는 율법준수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5,17)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려는 이방인이 볼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저자는 말하지 않는다. 이방인 선교를 결정한 것은 이 유대기독교적인 공동체가 당시 이미 이스라엘과 독립해 있었던 이방기독교적 대교회로 향한 커다란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길게 볼 때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팔레스티나와 시리아 지방의 유대기독교의 공동체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 든 이방인교회에 편입되어 종국에 그들에게로 흡수되는 길이다. 이것이 마태와 시리아에 있던 그의 공동체가, 그리고 더 예를 들자면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소아시아에 있던 그의 예언자적인 동아리가 걷기 시작했던 길이다. 이방인 선교라는 임무는 마태와 그의 공동체가 그랬듯이, 이 방향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또 다른 한 가능성은 이스라엘과 이방인교회 사이에서 독립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길을 시리아에 있었던 많은 유대기독교인들이 걸었다. 그들은 져스틴 (Dial 47,2-4) 이래 많은 교부들에 의해 알려졌고 점차 그들로부터 비판적으로 판정된다. 그들이 교부들과 다른 점은 그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준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마태복음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사렛복음서, 에비온복음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은 여기서 역사적으로 분수령에 서 있다. 그의 율법에 대한 긍정은 그를 유대교와 잇는 다리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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