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화면으로 첫 화면으로
유대교와 대립하는 마태공동체: R.Hummel (마태-2)

서론

편집사비평을 본격적으로 마태복음에 적용한 글을 들라면 G. Bornkamm의 Die Sturmstillung im Matthäusevangelium (1948)이 꼽힌다.(주1) 이 글 이후 그의 제자들과 (G. Barth, Das Gesetzesverständnis des Evangelisten Matthäus, 1955, H.J. Held, Matthäus als Interpret der Wundergeschichten, 1957)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R. Hummel, 1960, G. Strecker, Der Weg der Gerechtigkeit, 1962) 편집사비평적인 시각으로 마태복음을 관찰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 졌다.(주2) 이번 기회에는 그 중에서 R. Hummel의 Die Auseinandersetzung zwischen Kirche und Judentum im Matthäusevangelium, 1963 (21966)을 소개(요약, 정리) 하고자 한다.(주3)

본론

A. 기본관점

R. Hummel이 마태복음을 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그의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아래와 같다. 즉 "마태공동체는 바리새파주의적인 유대교와 누가 더 바른 토라이해를 갖고 있나 하는 문제를 가지고 유대교 내에서 대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구약성서에 대한 이해에 근거해서 ("옛 사람에게 말한 바 ... 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5,19ff) 자기들이 바리새주의적인 유대교보다 '더 낳은 의'를 (마 5,20) 가졌다고 자부하면서 유대교 내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던 공동체라고 저자는 본다.

B. 저작 시기

우선 그는 마태복음의 저작시기를 70-85년 사이로 본다. (31쪽 이하) 그 이유로 다음를 든다.

1. 바리새인들의 역할이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두드러 진다: 예수님의 주요 정적이 이 복음서에서 -특별히 논쟁하는 부분에서 (12,24.38; 21,45; 22,34f.41)- 그들로 설정되어 있다. 이 복음서에 만 '바리새인 보다 더 낳은 의'에 대해 (5,20), 그들에 대한 심판선언 (15,12f), 그들에 대한 경고 (23장)가 있다. (13쪽) 그들은 예수님께서 재판받는 과정에 (다른 복음서보다) 깊히 관여한 것으로 묘사된다 (21,45; 27,62). (13쪽) 즉, 바리새인들이 유대교의 역사에서 볼 때 주도권을 잡는 때는 성전멸망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이후 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토라해석의 문제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유대교의 중심이였던 성전이 파괴됨에 따라 대신 토라해석을 근간으로 (Grundlage) 해서 유대교를 재건한다. (14쪽, 31쪽 이하) 그러므로 마태복음에 나타나 있는 바리새인을 강조하는 경향은 성전멸망 이후 바리새인들의 주도권 하에 재편되어 지고 있는 유대교를 마태복음이 자신의 시대적, 환경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 또한 마태복음에서는 '저희 회당'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4,23; 9,35; 10,17; 12,9; 13,54; 23,34). 이는 마가복음에도 있지만 (1,23. 39), 막 3,1; 6,2; 13,9에서 알 수 있듯이 그다지 마태처럼 강조되어 사용되지 않는다. (29 쪽) 즉 마태공동체에게 있어서 회당이란 자신들과 구분된 바리새이적인 유대교의 회당을 의미한다. (29 쪽) 이는 한편으로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3. 그러나 다른 한편 유대교의 18기도서나 (대략 주후 85년), 반이단적인 Berekha나, 요한복음 (9,22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 12,42; 16,2),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등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 간의 구체적인 결별의 징후를 엿볼 수 있는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그러한 기미를 찾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29 쪽 이하)

4. 마태복음 내에 있는 박해기사는 (10,23; 24,16) 주후 70년 성전멸망을 암시한다고 본다. (30쪽) 그리고 한편으로 그 기사는 (박해받고 있다는 그 사실로 인해) 아직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회당 내에 있음을 증거한다. (31쪽)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는 구절이나 (17,27) (32쪽), '모세의 자리'가 주요한 전거로 언급되는 점 (23,2) (31 쪽),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대해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 (비판을 가하면서도, 즉 예를 들면 23,3.15.16.24) 등은 아직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내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31 쪽 이하) 이상의 모든 점을 종합하여 저자는 마태복음이 70-85 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본다.

C. 내용

저자는 자신이 말한 테제를 위해 네 가지 관점에서 (율법 34-75쪽, 성전과 제의 76-108쪽, 메시아 109-142쪽, 이스라엘과 교회 143-161쪽) 마태복음을 살피고 있다.

1. 율법

토라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마태공동체에서도 근간으로 여겨진다 (5,17ff). (55.69쪽)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부분에서도 (12,7; 15,3) 토라의 권위는 당연시 되고 있다. (55쪽) 심지어 저자에 의하면 마태공동체는 내부의 반율법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고 본다 (5,17ff; 7,12-27; 11,12f; 24,10-13). 즉 마태공동체는 두 가지 전선을 (바리새주의적으로 각인된 유대교와 내부의 반율법주의) 가지고 있다고 본다. (64ff)

마태공동체는 예수님의 토라해석에 근거한 (5,17....; 5,21ff...) 다른 토라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뜻이라고 본다 (19,8f). (75쪽)

2. 성전과 제사

마태복음은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5,23f; 8,4; 21,13; 참고 막 12,32f 여기서는 제사에 대해 비판적이다). (80ff. 95ff)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전 파괴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함으로 야기된 형벌로 (21,41; 27,24f) (91쪽), 그들이 부활의 복음을 거부한 형벌로 (22,7) (85쪽),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12,6; 12,41) (91.100쪽) 본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성전파괴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14,58). 이에 반해 마태복음은 (26,61) 이것이 예수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본다. (93쪽) 이런 맥락에서 성전파괴를 유대교의 잘못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실행된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유대묵시문학적 사고에 근거해) 이해한다. (94쪽)

12,7 (호 6,6 인용)에서 마태는 사랑의 계명을 통한 제사의 종말론적 극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100쪽) 따라서 마태공동체는 (내적으로 구약성서에 의해 그 정당성이 인정된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해, 외적으로는 70년에 일어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성전제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103쪽) 이에 반해서 바리새이적인 유대교는 사랑의 계명을 단순히 임시적인 (제의를 대신하는) 대용물로 보았다. 그들은 종말에 성전제의가 다시 거행될 것이라고 믿었다. (100쪽)

3.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많은 칭호중에서 마태는 '다윗의 자손' (9회)을 선호한다. 이 칭호는 한편 유대교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116쪽 이하) '다윗의 자손' 이라는 칭호는 기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9,27ff; 12,23; 15,22; 21,14f). (118 쪽 이하) 즉 기적, 병고침은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메시아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121 쪽 이하) 이를 통해 유대 측이 제기하는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반대가 반박되어 진다. (119 쪽 이하) 구체적인 예로 저자는 바알세불 논쟁기사를 (12,22f) 든다. 그는 이 기사를 마태의 기적을 높히 평가하지 않고 이에 따라 예수님의 기적을 사탄의 활동으로 보는 (V 24) 유대교에 대한 반박논증으로 본다. (123 쪽 이하) 결론적으로 여기서 마태는 그들을 악하다고 선언한다. (V 34) (126 쪽)

유대교처럼 (PsSal 17,21.32.40-43) 마태복음도 예수님을 오로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1,21; 2,6; 10,6; 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21,1-11) 이해한다. (136 쪽 이하) 그러나 마태복음은 독특하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Barmherzigkeit) 죄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18,17; 비교 5,46f) 미침을 말하고 있다. (22. 140 쪽) 즉 마태에 따르면 이방인은 죄인들과 동일선 상에 있으며 (140 쪽) 따라서 예수님의 죄인들에 대한 자비하심은 이방인들에 대한 자비하심을 (이방인들을 고치심 8,13; 15,28) 의미한다고 본다. (140 쪽) 이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기적행위는 "이방인 선교를 위한 내적인 전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본다. (140 쪽)

마태는 지상의 예수님과 (낮아지신 이스라엘의 왕)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분한다. (141 쪽)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결과 '이제부터' 예수가 더 이상 지상에 계시지 않게 되었다. (23,39; 26,64). (141 쪽) 지상의 예수님의 선교현장은 이스라엘에 국한된다. 그러나 승귀한 예수님은 이 단계를 끝내신다. (142 쪽) 승귀한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가 주어진 바, 제자들을 이방인들에게 파송한다 (29,19). (141 쪽) 즉 그 분께서는 이방인 선교의 길을 여셨다 (142. 152 쪽).

4. 이스라엘과 교회

'하나님 나라' (Basileia)는 마태의 교회를 이해하는 데 핵심단어이다. (146 쪽) 유대교는 원래 하나님 나라의 자손이다. (13,38) 그들은 의로은 자로 여겨진다 (13,43). 즉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우선권을 갖고 있었다. (147 쪽) 그러나 유대인들의 불신앙 때문에 이스라엘과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간의 연관성이 깨어지게 되었다 (8,12). (147 쪽 이하) 그 대신 교회가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149 쪽) 이제는 교회에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유보적으로, 즉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약속의 조건이다 (21,43). (149 쪽 이하) 종말의 심판과 관련해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이라는 의미가 그 가치를 잃게 된다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대신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종말론적인 만찬에 참여하게 된다 (8,11f). (150 쪽) 이로써 이스라엘의 과거를 교회가 자신의 과거로 갖게 된다. (150 쪽)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이방인에게 구원의 기회가 열렸다. (종말의 하나님나라에서 이방인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약속과 유대인은 그 기회가 박탈됨 8,11f; 21,43) (146 쪽 이하) 이때 토라가 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마태에게서는 가부의 기준이 된다. (151 쪽)

마태가 생각하는 교회는 종말론적인 제자공동체로써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새로운 공동체이다. (151 쪽) 마태가 유대인들에게 심판의 선포로 선언하는 내용은 자신의 교회에도 적용된다. 즉 공동체는 아직 심판을 앞두고 있으며, 공동체에 속했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7,21ff; 13,24ff.36ff), 열매 (7,16ff; 21,43), 의 (5,20; 6,33), 완전함이 (5,48; 19,21) 요청되어 진다. 교회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전 단계이다. (156 쪽) 교회와 바리새이적 유대교의 차이는 마태의 교회가 더 낳은 의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5,20) (156 쪽)

D. 마태공동체의 상태, 저자

저자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마태공동체의 상태를 묘사한다. 그들은 유대교 내에서 강하게 각인된 자신의 고유한 삶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33. 159쪽) 그들은 내적인 독립성과 (innere Selbständigkeit) 외적인 귀속성 (äußere Zugehörigkeit)을 갖고 있다. (159 쪽)

그들은 예수께서 토라의 메시아적인 완성자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자신의 고유한 율법이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유대적-바리새이적인 율법전통이 필요없었다. 예수께서 사랑의 계명을 제의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그리고 그분께서 심판자적인 전권으로 성전을 멸망케 하셨다고 보았기 때문에 마태공동체는 성전제의로 부터도 자유로웠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그 자신의 사고 구조 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리새이적으로 각인된 서기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신앙상의 소속으로 볼 때 유대인도 바리새인도 아니다. 그는 아마 (이방인에서) 개종한 바리새이주의 풍의 유대적 서기관일 (ein konvertierter jüdischer Schriftgelehrter der pharisäischen Richtung) 것이다.

마태공동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많은 유대기독교적인 특성은 이 공동체가 외적으로 유대 회당조직에 속해 있음을 말해 준다. 유대교가 이들에 대해 아직 궁극적인 출교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방인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은 (이들이 마태공동체를 주도한다) 아직 회당조직의 일원으로 남아 있었다. (159 쪽)
-----------
주1) 참고로 마가복음을 이 방식으로 본격적으로 살펴본 최초의 학자들을 들라면 W. Marxen, Der Evangelist Markus. Studien zur Redaktionsgeschichte des Evangeliums, 21959와 T.A. Burkill, Mysteiuos Revelation. An Examination of the Philosophy of St. Mark's Gospel, 1963, E trocme, La formation de l' evangile selon Marc, 1963. 누가복음은 H. Conzelmann Die Mitte der Zeit. Studien zur Theologie des Lukas, 61977, W.C. Robinson, Der Weg des Herrn. Studien zut Geschichte und Eschatologie im Lukasevangelium, 1964, H. Flender, Heil und Geschichte in der Theologie des Lukas, 1965.
주2) J. Lange, Einführung, in; ders. (Hg.), Das Matthäus-Evangelium, WdF 525, 1980, 12f.
주3)이글은 원래 1960년 Kiel대학에 제출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첫 화면으로   목록 화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