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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복음/3.신적이며 인간적인 존재규정으로서의 생명과 죽음 (요한-6)



3. 신적이며 인간적인 존재규정으로서의 생명과 죽음

3.1. 독자에 의도설명: 요한복음의 목적 (20,30-31)

   계시의 책으로써, 요한복음의 목표는 독자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들이 그를 믿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믿게하는 데에 있다 (20,31).
- 요한복음의 목표는 독자가 믿는데에 있다. 믿음이라는 말은 요한의 중심개념이다. "믿는다"는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98번 나온다. - 믿으라는 요청은 하나님을 믿으라는 요청이 아니다. (막 1,15 참고 막 11,22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논증의 전제에 속한다. (14,1a) 독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를 아버지가 보내셨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항상 요한의 믿음의 대상이다. 예외적으로 (5,46.47; 10,38; 참고 14,1) 예수를 모세와 성경과 아버지와 그의 일들을 고백한 증언들 때문에 믿으라고 하기도 한다. - 예수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지셨고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과 그를 믿는 믿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가 계시자라는 믿음은 그를 생명이요 빛이자 하늘의 떡이요, 진리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요한적인 믿음은 (명사 믿음은 요한복음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확신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근원과 새로운 정체성을 통한 실존의 규정이다. - 계시자의 말씀은 하나님의 로고스가 육이 되었으며 (1,14) 계시자가 인간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역사상의 한 인간, 나사렛 예수로 나타나셨다는 인간되심의 전적인 모순이다 (키에르케골, 철학적 단편). 이 말씀은 인간을 이것이냐, 저것이냐 앞에 놓는다. 속해지거나 믿어지거나 혹은 거절되거나이다. - 이 말씀을 믿음은 생명을 갖기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요한복음은 생명과 영생이라는 두 개념을 교대적으로 사용하고있는 바, 이 둘은 계시를 가져다주는 구원을 서술하기 위해 쌍방적으로 해석된다.
   요한 20,31의 이별선언 후 요한복음의 근본적인 언명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며 그 예수 안에서 아버지가 계시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수는 자신을 계시자이며 구원자로 계시하시며 그의 말씀의 내용은 자신이 계시자라는 점에서, 계시자이며 구원자이시다. 요한적인 계시자의 톡별한 점은 그가 계시의 단순한 그것으로 (das blosse Dass) 계시되어지며 (불트만, 신약신학 §48) 구원이 이 역설적인 계시를 믿는 믿음에서 매개되어 진다는 점에 있다.

3.2. 하나님 사랑의 계시로써의 전적인 역설

   계시는 다른 세계에 관한 시각을 제공한다던가 외적인 관찰의 대상이 될 수있다던가 하는 천상의 비밀들의 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요한의 계시자는 다름아닌 계시의 그것(Dass)을 계시한다. 인간되심은 이세상의 역사내의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으로써 인간되심은 생명이며 어두움 속에서 빛이다.

요 1,1-5

   하나님의 인간되심의 (요 1-21) 계시의 책은 서문을 통해 순서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세 부분은 신적인 유래, 인간되심 그리고 말씀의 수용이라는 세 테마를 통고하며 서로를 명백히 해준다: I. 요 1,1-5, II. 요 1,6-14, III. 요 1,15-18
- 말씀에 생명이 있다 (1,4a). 이 언명은 즉, "생명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써, 즉 육이 된 로고스의 선물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부정적으로 의미된다. 긍정적으로 이 언명은 1,12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즉, "생명을 얻다"라는 의미는 말씀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면서 행해지는 새로운 정체성 수여이다.
- 말씀은 그것이 어둠에서 빛났던 인간의 빛이였었다는 점에서 생명이였다. 부정적으로 이 언명은 즉, "세상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다"는 의미된다. 긍정적으로 빛은 보고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위한 조건 뿐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어두움 속에서 생각할 수 없고 추측할 수 없는 현실의 출현을 나타낸다.
- 하나님의 인간되심의 사건이 세상에 낯설다는 점에서 어두움은 빛을 수용하지 못한다. (1,5)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세상의 인식의 가능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간격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명은 새롭고 추측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로 나타나는 바, 이 현실은 인간이 되신 로고스와 연관되어 있고 세상을 아는 모든 다른 생명을 어둠으로 나타나게 한다.

요 3,14-16

   지상의 예수의 역사는 육이 되신 하나님의 로고스라는 모순을 계시하는 두 계기에 전적으로 집중되고 있다: 아버지에게로 승귀 (즉, 높아지심) (3,14; 참고 8,28; 12,32). 이는 하나님의 인간이 되심이라는 계시로 이해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되심을 해석해 주는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심이다. (3,16)
   이 계시의 사건은 세상을 위한 하나님 사랑의 행위로 인정된다. 이의 목표는 두 차례 언급된다: "이로써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3,15//16b)
- 이중의 언명의 인간학적인 전제는 언급되어지지 않은 계시, 즉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지 않았으면 누구나 멸망한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인간되심이라는 전적인 모순의 사건은 생명이 없는 세상의 상태에 대립되어 있다.
- 하나님의 육이 되심이라는 전적인 모순으로써의 하나님 아들의 보내심과 다시 아버지께 되돌아가심은 세상에서의 즉,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과 생명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계사에서 현존하는 사건이다.
   신자들에게 약속된 생명은 세상에 있는 것에 속하지 않은 것이다. 생명은 세상 내에서 불가능하며 생각할 수 없는 가능성이며 이 가능성은 단지 선물로써 만, 따라서 믿음에서 선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은 인간되심이라는 전적인 모순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하나님 현존의 종말론적인 사건에서 연원한다. 어둠이 빛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 분명히 선언되고 있는 (1,5) 하나님과 세상 간의 차이는 하나님의 가깝지 않으심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자신을 계시했고 그 사랑은 단지 믿음을 통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데에서 기원한다.

3.3. 믿으라는 요청과 생명의 약속

   2,1-12,50의 예수의 가르치심의 내용은 자신이 계시자이며 무리들과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요청에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생명 (11,25), 생명의 근원 (4,14), 생명의 떡 (6,27.33.35.48.51.53. 54) 그리고 생명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께 접근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3,36; 5,24) 영생을 소유한다 (4,36: 6,40.47.51.53.54.68; 10,10.28; 12,25.50).
- 전적인 모순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믿음은 그리고 신뢰를 육이 되신 말씀에 두는 믿음은 하나님 현존의 사건과 생명의 선물에 자신을 개방하는 실존적인 태도이다. 따라서 계시자는 믿음을 촉구한다.
- 하나님 현존의 사건은 죽음의 한계에 제한되지 않는 미래를 연다. 따라서 믿는 자에게 약속되어진 생명은 영생이다.
- 죽은 자는 (5,21.25: 예외 2,22; 12,1.9.17; 20,9; 21,14 "죽은자의 부활") 죽음이라는 (thanatos 5,24; 8,51.52; 11,4; 예외 11,13; 12,33; 18,32; 21,19 "나사로와 베드로와 예수의 죽음") 영역과 규정 하에 그리고 어두움과 (skotia 1,5; 6,17; 8,12; 12,35.46; skotos 3,19) 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인간들이다.

(I.복음/ 3.생명과 죽음 [요한-6] 00.07.0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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