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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을 위한 서문 1 (요한-2)



1. 요한복음의 테마는 '정체성과 뿌리'라 할 수 있다.

1.1 요한복음서는 하나님 계시의 책이다.

     요한복음의 내용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 구원자의 자기계시이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허락하신]자들을 [즉, 구원자를 따르는 신자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종말론적인 하나됨 하에서 자신에게 오게하기 [이끌기] 위해 오셨다 (요 13,32). 이러한 계시의 내용이 책의 형태를 규정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 뿐 아니라 형태도 내려오신 하나님 아들의 자기계시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구조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1-12장: 하나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오심, 말씀이 육신이 됨, 세상에 아버지와 아들이 계시됨, [이에 대한] 세상의 저항.
     13-21장: 하나님 아들이 아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심, 제자들은 지상에 머물라고 지시, 아버지께 돌아감으로 써 승귀하시고 영화롭게 되신 아들.

      위의 두 부분에서 요는 두 계시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한편으로 그를 믿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세상에 보내진 역사적인 인간이, 즉 나사렛 예수가 아들로써 그리고 종말론적인 구원자로써 계시되어 졌다. 다른 한편으로 불신앙이 이 아들의 계시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는 이 불신앙이 계시되는 것을 [드러나는 것을] '심판' (krisis)라고 한다:

      요 1-12 = 세상의 위기로써 하나님 아들이 내려오심
      요 13-21 = 세상의 위기로써 하나님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심

     요 12,44-50은 하나님 아들의 공적인 [공개적인] 계시의 결과를 잘 요약하고 있다. 반면에 요 13,1-3은 고별설교, 십자가에서 높여지심, 아버지께로 돌아가심을 이끌고 있다.

1.2 계시의 현재화로써의 책인 요한복음

     요의 연관성, 일관성, 통일성은 이야기의 서술적인 구조에 있지 않고 자기설명과 재해석의 연속의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계시전통(Offenbarungstradition)의 논리에 있다.

     요 1,1-18은 전체 요의 계획적인 요약이자 이를 미리 예시하는 것이다.
     요 3,31-36은 요 3,1-30 혹은 1,19-3,30을 새 해석하는 것이다.
     요 15,1-16,33 (두번 째 고별설교)은 첫 고별설교 (13,1-14,31)를 새로운 해석이다.
     17,1-26 (예수의 고별기도)은 첫, 두 번 째 고별설교의 (13,1-16,33) 새 해석이다.
     요 21,1-23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 째 현현)은 첫 현현의 (20,1-29) 새 해석이다.
     요 21,24-25 (요의 두번 째 끝맺음)은 첫 번 째의 (20,30-31) 새 해석이다.

     요는 전기가 아니라 계시의 책이다. 이로써 이야기가 건너 뛴다던가 공백이 있다던 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돌연히 3,30에서 3,31으로 혹은 3,36에서 4,1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아래의 부분들이 그 예이다.

      요 5-7의 순서는 매우 혼란스럽다: 이전부터 순서가 4장 - 6,1 - 7,1-14 - 5장 - 7,15ff 이거나 5장과 6장이 거꾸로 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주장되어진다.
      요 14,31-33은 곧바로 수난이야기 (18,1ff)의 시작을 말한다. 그러므로 15-17장의 고별설교나 대화들은 매우 의외적이다.
      책의 종결로 20,30-31이 설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21,1ff는 시작으로 그리고 21,24-25는 반복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확실한 것은 요한의 (여러) 저자나 편집자는 이 책을 연속적이고 일관성있는 이야기로 꾸미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의 형태는 계시전통이라는 즉, 계시된 진리를 스스로 변화된 현재에 현실화한다는 해석학적인 과제에 의해 더 규정되어지고 있다.

1.3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하나됨과의 종말론적인 일치로서의 믿음

      요의 형태와 내용은 요한 공동체의 설득체계와 요한적인 기독인들의 자기이해에 상응한다. 구원자의 하늘의 공동체가 땅에 만들어져 있고,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 속에서 살고 있음을 믿는 제자들은 전 시대에 걸쳐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표본적인 모습이다. (20,29) 그들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속하지 않고,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 자들이다. (요 3,3.5)

      1. 그들은 위에서부터 새로 태어난 자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믿는 자들은 누구나 생명을 갖게 되며 죽지 않기 때문이며 (3,14)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모든 개인에게 믿으라는 실존적인 결정을 요청하는 한에서 [함으로 써] 삶의 가능성을 준다. 계시는 믿는 모든 사람을 일인칭 단수의 주체로 만든다.

      2. 믿는 모든 사람들은 아직 '이 세상'에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 세상으로 부터'의 존재가 아니다: 기독교적인 실존은 계속 지상에 그 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뿌리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에, 그분께서 [즉 아들] 선택한 제자를 위한 아들의 사랑에 그리고 새로운 인간들 간의 서로서로의 사랑 안에 있다 (15,1-17).

      3. 이 새로운 뿌리는 그들에게 이 세상과 구별시키는 새로운 정체성을 준다 (15,18-16,15). 이 새로운 정체성은 양면성을 가진다. 하나는 그들은 그들이 더 이상 자신에 속하지 않고 신적인 빛의 진리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당 한다 (15,18-16,4a). 다른 하나는 그들의 특징은 그들이 '영생'을 혹은 '생명'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 그리고 지금, 아버지와 그리고 자신의 삶을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어주신 아들과의 일치에 의해 산다 (14,18-20.27-2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래에 하늘에서 완전한 일치 속에서 살 것이라는 희망에 의해 산다 (14,1-4; 16,16-24).

      요한의 독특한 언어와 표상세계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해석은 역사적 예수와 근본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예수께서 식탁을 함께하신 사건들은 (눅 7,31-35) 그를 통해 각각의 개인들은 새로운 인간으로 주체적인 '나'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새로 창조된어 졌다.

참고문헌

- Meeks, W. A.: Die Funktion des vom Himmel herabgestiegenen Offenbarers fuer das Selbstverstaendnis der johanneischen Gemeinde, in; Meeks, W. A. (H.g.), Zur Soziologie des Urchristentums. Ausgewaehlte Beitraege zum fruehchristlichen Gemeinschaftsleben in seiner gesellschaftlichen Umwelt, Muenchen 1979 245-283 (= JBL 91[1972], 44-72)

(요한복음을 위한 서문 1 [요한-2] 2000.04.0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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