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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샌더스,『바울』, 서울: 시공사, 1999



                                       


조광호 (신약학, 전임강사)


 

E.P. 샌더스(Sanders)는 1937년 미국 텍사스 주 그랜드 프레리 출생으로 1966년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 종교학부 교수(1966-1983)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석좌 교수를 거처(1984-1990) 1990년 이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듀크 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또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핀란드의 헬싱키 대학에서 문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으며, 1985년에는 『Jesus and Judaism』(한국어역: 예수운동과 하나님나라: 유대교와의 갈등과 예수의 죽음 [이정희 역], 한국 신학 연구소, 1997)이라는 책으로 종교 출판물 분야의 저술 상을 수상하는 등, 복음서와 바울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연구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부인 M. 데이비스(Davies)도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학자로서, 이 두 부부는 『공관복음서 연구(Studying the Synoptic Gospels, SCM Press, 1990)』라는 책을 함께 쓰기도 하였다.


1977년의 저작 『Paulus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그는 유대교를 율법주의적인 행위를 통해 의를 추구하는 종교라는 전통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저서에 따르면 유대교와 바울 간의 극단적인 불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1983년의 저작 『Paul, the Law, and Jewish People』에서 그는 바울을 전적으로 유대인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했으며, 무엇보다도 유대교를 ‘계약’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함으로서 바울과 유대교 간의 관련성에 주목한다. 그는 바울을 이해할 때 유대 종말론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슈바이처(A. Schweitzer)의 저서 『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 Tübingen 21954 (영역 『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를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로 강조한다.


이상의 연구 경향을 고려할 때, 샌더스의 입장은 기존의 독일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바울 연구에 대한 하나의 반명제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대에 유대교에 대한 기념비적인 독일어 저술인 E. Schürer의 『Geschichte des jüdischen Volkes im Zeitalter Jesu Christi』(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 민족의 역사)가 영역되면서, 영미권에서는 유대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샌더스는 전래의 입장을 거부하고 새로운 초대 기독교의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1). 일찍이 바울을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대결한 이로 보는 전통적인 시각에 반기를 든 사람은 스웨덴 출신의 K. 스탕달 (K. Stendahl,「The Apostle Paul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HThR 56, 1963 199-215) 이다. 샌더스는 이 입장을 계승하고 있으며, J.D.G. Dunn도 이에 찬성한다.


본 「서평」란에서 다루고자 하는 E.P. 샌더스의 저술은 1991년에 출간된 『바울』이라는 책이다. 그의 간략한 약력 소개나 주 1)에서 제시된 저술 목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저술한 것이다. 학자로서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토론과 비판을 거쳐 정련된 완숙의 경지에 이른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신학적 통찰을 총 집대성하여 사도 바울에 대해 비교적 간략하게 (한국어 번역으로 241 쪽) 설명하고 있다. 개론서를 짧게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지를 염두에 둘 때, 샌더스의 책 『바울』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들의 ‘읽기’를 방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도록 작용하는 ‘각주’까지 없는 까닭에, 수월하게 대할 수 있는, 바울에 관한 좋은 안내서로서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바울이 살았던 시대와 공간으로 독자들을 직접 인도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의 생각과 삶의 진면목을 알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41쪽)

이를 위해 『바울』의 저자는 전기적(傳記的)인 형식으로 (2장)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바울의 생애를 재구성함에 있어, 샌더스는 조심스럽게 사도행전을 사료로 이용한다 (24-25쪽, 42-43쪽). 그러나 바울 서신에 나와 있지 않는 부분들에 (예를 들면 예루살렘에서의 체포 및 로마로 압송) 관해서는 사도행전의 기술을 신뢰한다 (36쪽).

사실적인 자료에 의거한 바울의 선교 상황 설명 (3장 42-45쪽) 및 선포 내용 분석은 (46쪽 이하) 평이하지만, 핵심을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4장에서는 바울의 종말론에 대해 언급한다. 저자는 여기서 도식화하고 공식을 만들어 냄으로서 (65쪽) 바울의 생각을 왜곡시키는 위험을 피하고 있다. 대신 해당 구절들을 객관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는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우리는 단지 그[바울]가 생각했던 것을 아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61쪽).

바울은 종말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상황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의 종말론은 수정되기 했으며, 개인 불멸 사상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샌더스는 결론을 내린다. (66쪽)

6장에서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의 율법을 설명하고 있다. ‘의로움(dikaiosynē)’이라는 어휘에 대한 통찰과 (85쪽 이하) 율법 이해와 관련한 루터의 영향에 (92쪽 이하) 대해 다룬 후, 바울의 논지를 상세히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7장에서는 로마서의 여러 구절들을 통해 ‘의롭게 되다’ 또는 ‘의’라는 단어가 사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새로운 사람이 되는 변화의 과정을 묘사한다고 주장한다 (139쪽). 9장에서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입장에 대해 논한다.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은 각 상황에 따라 율법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러나 율법에 관한 체계적인 사고가 바울에게 없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152쪽).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논할 때 (대답: “별로 언급이 없다”),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언급할 때 (대답: “긍정적이다”), 율법의 목적에 대해 논할 때 (대답: “정죄를 위해 주어졌다”) 그리고 새 율법과 비교할 때 등 (대답: “옛 율법은 가치가 없다”) 네 가지 경우에 각기 달리 율법에 대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11장) 장에서 저자는 바울 신학의 본격적인 문제에 대해 천착한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일관성 없는 분으로 비쳐질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해결책으로 바울 사고의 ‘독창적인 역전’(216쪽)을 제시한다. 유대인의 복음 거부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시기하게 되어, 결국 그들도 구원의 섭리 하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불순종까지도 이용하셔서 자신의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은총으로 충만한 분이시다. 그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종국에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피조물이, 더 나아가 온 우주가 구원된다. 그러나 여기서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리는 바울의 파멸 선언이 (예 빌 3:18-19)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샌더스는 이 문제를 바울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신학자가 아닌 선포자요 카리스마적인 인물로 설명함으로서 해결한다 (222-224쪽).

무엇보다도 샌더스는 바울을 강한 종말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자로 묘사한다.

“마지막 날은 임박해 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거절했음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시기는 가까이 다가왔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바울은 서두를 필요를 느꼈다. 『바울』, 16쪽 (참고 66, 100쪽)”

그에 따르면 바울은 사변적이거나 추상적인 이론가가 아니라 임박한 때에 대한 각성된 의식 속에서 설교자요 선포자로서 서둘러 여러 지역에 복음을 전했던 이방인의 사도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로 삼으셨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은 은총을 이방인에게 베푸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총은 무한정하여 결국 이스라엘 까지도 종국에 구원케 된다는 것이 바울이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바울』 한 문장, 한 문장에는 긴 세월의 연구를 통해 축척된 신학적 성찰의 결과가 배어 있다. 비록 바울의 생애 부분에 관한 소개가 짧고 (2장) 사상에 대해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신학을 처음 시작하거나 관심이 있는 초보자들로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 대해 핵심적인 사안들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를 해 놓았다는 점에서, 필독을 권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저작물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샌더스가 제시하고 있는 ‘참고도서’ 부분도 (228쪽 이하) 보다 깊은 바울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책들을 우리에게 체계적으로 잘 소개해 주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해서도 우리는 샌더스의 바울 해석의 입장을 연구사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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