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인가 목표인가 완성인가?

- 로마서 9-11장의 문맥 상에서 로마서 10:4

 

들어가는

 

             로마서 10:4 바울의 율법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구절로 알려져 있다[1]. 하지만 의미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2].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를 te,loj no,mou (telos nomou)라고[3] 말하고 있는데, 단어 telos 어떤 뜻으로 해석할 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단어는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4], 무엇보다도 "완성", "목표", "마침" 등으로 해석될 있다[5]. 바우어(W. Bauer) 그의 사전에서 telos "마침"이자 "목표"으로 보고 있다[6]. 델링(G. Delling) "종결, 마침"(Aufhören) 의미로 이해한다[7]. 한편 대부분의 성경은 "마침"으로 번역한다[8]: 예를 들면 독일권의 Luther, Zürcher, Elberfelder 성경 그리고 NJB (Einheitsübersetzung) "Ende", 영어권의 KJV, NKJ, RSV, NRS, Good News Bible, REB 명사 "end" (NEB 동사 "end") 번역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글성경도 개역은 "마침"으로, 표준 새번역은 "끝마침"으로 공동번역은 ""으로 번역하고 있다. 연구사적으로 고찰할 telos (1) "마침"으로[9], (2) "목표"[10], (3) "완성"으로[11] 그리고 (4) 앞에서 거론한 중에서 가지 의미가 함께 있다고 보는 경우 (예를 들면 "마침 + 목표"[12], "목표 + 완성"[13]) 등으로 번역된다.

             소논문의 목적은 telos 다양한 이해와 관련하여, 과연 의미를 무엇으로 봐야 지를 고찰하는 데에 있다[14]. 이를 위해 10:4 속한 광의와 (9-11)[15] 협의의 (9:30-10:4[16]) 문맥을 살피고, telos 용례를 알아 보며, 그리고 바울의 논리 전개를 자세히 관찰하고자 한다.

 

몸말

 

I. 로마서 10:4 문맥상의 위치

 

             로마서 10:4 로마서 9-11장의 일부분이다. 로마서 9-11장은 "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지[17],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연대감 속에서, 그들은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어떤 장점이 있는 지를 밝힘으로써 (9:1-5) 9장을 시작한다. 비록 이스라엘이 현재 구원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하여 졌다고 없음을 밝힌다 (9:6-18). 근거는 이스라엘 사람과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새로운 정의 때문이다 (9:6-7). 이는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적인 자유 하에서 선택을 하신다는 사상과 연결된다 (9:10-18). 하나님은 어떤 흙덩이로는 천한 그릇으로, 어떤 흙덩이는 귀한 그릇으로 만들 권리가 있는 토기장이로 묘사되고 있다 (9:19-21). 하나님의 이러한 절대적인 자유는 이방인 구원을 정당화하며 (9:22-26) 당시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구원으로부터 제외되는 지를 해명하는 역할을 한다 (9:27-29). 이방인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유기(遺棄)라는 테마는 (30) 바울의 핵심 사상인 "믿음과 행위의 대립" 연관되어 설명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행위로 의에 이르려 했기 때문에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 31f), 이를 다른 말로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인 시온의 돌에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묘사한다 (33).

             10 초두에서 바울은 다시 자신의 동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들이 구원 받지 못한 것은 비록 열성은 있었으나 올바른 길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는 따라서 율법의 telos 되심으로, 결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었다고 천명한다 (10:1-4). 10:5-7에서 각각 율법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대비시킨다[18]. 그리고 후자의 의를 설명할 인용한 신명기 30:11-14 결론 부분을 8절에서 제시하며 바울이 전하는 복음 말씀의 핵심은 주님을 고백하고 믿는 자는 누구나 (11, 12, 13) 구원에 이르는 것임을 강조한다 (10:8-13).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10:1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믿지 않는 현실과 관련하여)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이 모두 믿는 것은 아님을 말한다 (10:16-21). 부분에서 잠시 이방인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질투심을 일으킨다는 테마가 예시되고 있으며 (10:19) 주제는 11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 진다 (11:11,14).

             11 초반부에서는 9장과 10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동질성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2). 이에 앞서 분명한 어조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1) 있는데, 이는 9:6에서 이미 (소극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인 중에서 선택된 자들은 수효가 많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남은 사상'으로 ("무릎꿇지 않는 칠천 " 11:4) 변호한다. '남은 ' 들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로 선택된 자들이며 (5-7) 나머지는 완고해 졌는데[19], 이유는 일련의 구약 인용을 통해 ( 29:3, 29:10, 68:23) 밝혀진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음으로써 구원의 기회가 이방에 주어졌으며 (11-12)[20] 따라서 그들은 질투심을 갖게 되고 (11) 결과적으로 일부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14). 그리고 설명 중간에 종국에는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확신하는 발언을 바울은 한다 (12, 15). 또한 이스라엘이 구원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관한 언급과 함께 (16)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예를 듦으로써 (17-24) 이방인들은 교만하지 것을 권고한다 (20-24). 11:25-36 "비밀"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비밀이란 현재 이스라엘은 복음이 땅에 전파될 때까지 완고한 채로 있을 것이지만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25f). 끝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유효함을 상기시키면서 (29)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므로 (32) (과거 믿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자비를 베풀었듯이, 현재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30f) 이스라엘도 구원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33-36절의 송영으로 바울은 9-11장에 걸친 서술을 마친다.

 

II. 본문 분석

 

A. 9:30-33

 

             9-11장에서 언급된 바울의 구원 이해에만 국한해 봐도 (10:10, 13, 11:20 "믿음을 통해 의와 구원에 이름") 믿지 않는 이스라엘은 (10:16) 멸망할 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자녀됨의 약속을 하셨다는 데에 있다 (9:8). 그렇다면 현재 믿고 있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은 계속 유효한 것인가, 아닌가[21]? 만약 약속이 유효하지 않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장이가 된다[22]. 설령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어떻게 구원되는지, 그리고 지금 그들이 믿지않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생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먼저 바울은 이스라엘이 구원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11:32).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 까닭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원인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강팍케 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1:7-10).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구원이 이방인에 까지 미치게 되며 (11:11, 25), 이같은 현상을 통해 이스라엘에 시기심이 생겨 (11:11), 결국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차별없는 구원의지에 힘입어 11:26f, 29, 32 참고 9:24, 10;12) 그들도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11:31) 보았다. 이상의 관찰을 통해 있듯이 로마서 9-11장에서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에 근거해서, 종국에 믿지 않는 이스라엘도 구원된다"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에 대해 신실하시다"이다 (9:6a; 11:29).

             바울은 앞에서 (9:14)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버림을 받았고 이방인은 선택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에 근거한 것이므로 "그런즉 우리가 무슨 하리요"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다시 같은 표현으로 30절을 시작하면서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대비시킨다 (9:30-32). 먼저 이방인에 대해 논하면서 그들은 의를 좇지 않았는데 그것을 ("믿음의 ") 얻었다고 한다 (30). 의를 추구하지 않았는데 의를 얻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23]. 하지만 설명은 결국, 과거에는 이방인들이 구원사에서 배제되었는데 지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구원이 그들에게도 미치게 되었음을 일컫는 것이다[24]. 그와 달리 이스라엘은 "의의 (no,moj dikaiosu,nhj nomos dikaiosynes)" 추구했으나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31). 여기서 "의의 "이란 아주 독특한 표현으로[25] 갈라디아서 6:2 "그리스도의 ", 로마서 3:27 "믿음의 " 등의 표현처럼 "[26]" 긍정적인 개념에 의해 수식받고 있다[27]. 많은 학자들은 "의의 율법"이라고 로마서 3:21 또는 로마서 7:10 의거하여 "의로 이끄는", "의로 귀착하는 율법"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28]. 이처럼 ("율법의 " 아니라) "의의 율법"이라고 하는 점에서[29], 그리고 32a절의 내용에 따르면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지했더라면[30] 유대인들은 율법에 도달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31), 또한 10:2에서 바울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을 봐서도 "의의 율법" 내지 "율법"이라는 용어는 긍정적인 의미라고 있겠다[31]. , 31f절에서 바울은 율법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9-11장은 "율법"이라는 주제와 관련이 적다. 같은 사실은 단어가 여기서 4 밖에 (그것도 부분에 한정하여 9:31; 10:4f) 나오지 않고 있는 데서도 있다[32]. "의의 율법"에서 "" 바로 직전 30절에 이방인을 묘사할 사용된 단어로서 바울은 이를 유대인에게도 적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 이방인과 유대인을 각각 구속사의 전체 관점에서 평가할 공통분모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라고 있다 ( 10:4)[33]. 이와 달리 " (no,moj nomos)"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것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려고 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그들의 구원과 관련된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단어이다[34]. 의를 추구하지 않았던 이방인은 의에 이르렀으나 의의 율법을 좇던 유대인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구원의 관건은 "" "율법" 아닌 "믿음"이라 하겠다 (32a)[35].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믿음이 아닌 행위를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36]. 이러한 "믿음" "행위" 대비는 (비록 부분에서는 차례 밖에 등장하고 있지 않지만)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 3:20f, 27f, 2:16, 3:2, 5). 현재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서 (, 행위를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구원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태이다 (32b-33). 이를 바울은 시온에 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표현한다 (32b-33)[37].

             33절은 구약 이사야 28:16 8:14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정확하게 말하면 이사야 28:16[38] 근간으로 하고 이사야 8:14 나오는 돌에 대한 묘사를 사용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시온에 돌을 두시는데 돌은 다름아닌 부딪치고 거치는 (반석)이라는 것이다 ( 8:14). "부딪치고", "거친다" 원어는 pro,skomma (proskomma)ska,ndalon (skandalon)이다. 신약에서 단어는 종종 함께 쓰이는데 ( 14:13, 벧전 2:8, 참고 14:2) 간의 의미 차이는 거의 없다[39]. 중에서 skandalon이라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유대인의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9:33, 고전 1:23, 5:11). 갈라디아서 3:13 따르면 나무에 매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사고가 구약시대 이래 ( 27:26, 21:23) 유대교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유대인에게 거치는 것이 된다[40].

 

B. 10:1-4

 

             이방인과 이스라엘로 대별하여 현재 인류의 상태를 진단한 , 새로운 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제외되어 있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그의 은혜 안에서 다시 받아들여질 지에 대해 천착한다. 10장은 동족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염원으로 시작된다 (10:1). 1-4절에서[41] 바울은 "" 초점을 맞추어 이스라엘에 대해 진술한다. , 앞에서는 행위를 통한 시도 때문이라고 설명한 비해, 부분에서는 다른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잘못된 의를 추구했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비록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zh/loj zelos)[42] 있었으나[43] 그릇된 방식을 취하여 ("지식[44] 좇지 않았다") "자기"[45] ""[46] 세우려 했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3)[47]. 일부 학자들은 "자기의 " ( 3:9 구절이 속한 전후의 문맥을 근거로) "이스라엘 자신의 " 보면서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 이해하기도 한다[48]. 하지만 여기서 "자기의 " 하나님의 의와 대비되는, 집단적인 의미보다는 개인과 관련된 것으로서[49], 행위에 의한 "자기의 "라는 뜻으로 봐야 것이다[50]. 이를 9:30-33 연결시키면 이스라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고 있다: 구원의 수단으로 행위를 의지 =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님 = 자기 의를 추구 =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음.

             이같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조치가 취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집중적으로 다룰 4절의 내용이다[51]. 4절은 접속사 ga,r (gar) 통해 절과 연결되어 있다. gar 바우어(W. Bauer) 의하면 크게 가지 뜻으로 대별될 있는데[52] ("증거나 이유[53]", "설명", "결과", 그리고 "연결하여 계속 지속시켜 나간다는 의미") 여기서는 번째에 해당한다[54]. , 이스라엘의 자기 , 무지에 대한 발언의 근거인4절에서[55] 그리스도에 의한 (기독론적인 관점[56]) '율법의 telos' 언급된다.

             단어 telos[57] 바울서신에서 로마서 10:4 제외하면 12 등장한다. 전치사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면[58] (eivj te,loj eis telos "끝까지" 살전 2:16, e[wj te,loj heos telos "끝까지" 고전 1:8, 고후 1:13) (1) 행위의 결과에 따른 인생의 최종운명으로서의 "마지막"이라는 뜻으로 ( 6:21[59], 22, 고후 11:15, 3:19), (2) 중지 (고후 3:13) 또는 특별히 종말과 관련된 세상의 끝남, 종국 (Endpunkt) 의미로서[60] (고전 10:11, 15:24[61]), (3) 세금과 관련해서 ( 13:7 [2], 참고 17:25) 가지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 (3) 제외하고는 바울의 telos 용례는 시간적인 의미로서의 마침, , 종결의 뜻으로 사용된다[62]. 따라서 로마서 10:4 telos 우선 이같은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야 것이다[63].

             사전적인 의미로 telos 논문 처음에서 언급했듯이, 크게 "마침"이나 "목표" 또는 "완성" 뜻으로 이해할 있다. telos "목표"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서 9:30-33에서 경주라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diw,kw [dioko], katalamba,nw [katalambano], fqa,nw [phthano]; 참고 3:12-16) 10:4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64].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율법의 목표가 되심으로 이방인 뿐만 아니라, 율법을 추구했으나 행위라는 잘못된 방식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도 (9:30-33)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telos "목표" 이해할 로마서 9:30-33 문맥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65]. 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바울은 telos라는 단어를 어느 곳에서도 "목표"라는 의미로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66]. 그리고 10:4 "율법" 5절을 고려해 부정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잘못된 의의 문제는 5 이하에 비추어 ("율법의 ", "믿음의 "라는 종류의 의가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믿음이 의가 아닌 율법의 의를 추구했기 때문과 관련이 있으며,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이를 위해 율법의 telos 되셨다고 (4) 말한다. 따라서 4절에서 언급된 "율법" 그리스도에 의해 "목표"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67].

             일부 학자들은 telos "완성" 의미로 보기도 한다. 바울 서신 중에서 그리스도와 율법이 대립의 관계가 아닌 것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 6:2b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바울에 따르면 율법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믿음에 의해 폐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워진다 ( 3:31). 심지어 율법은 기독교의 핵심 개념에 의해 ("사랑" 13:10b) 또는 그리스도에 의해 요구가 ( 8:3f) 완성되고 이루어 진다. 이런 맥락에서 10:4 "그리스도는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킴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를 이루게 했다" 해석할 있다[68]. 해석은 9:31 "율법"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과도 부합된다[69]. 그러나 31ff절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율법에 이르지 못한 까닭은 행위로 말미암으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위해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느냐" 아니라 (여타 그의 서신 어디서도 이러한 논의는 없다[70]) "그들이 어떻게 올바른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율법의 로가 아닌) 갖게 되느냐"이다. 그러므로 telos "완성"이라고 보고,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율법을 통해 의가 이스라엘에 이루어 졌다고 10:4 해석하는 견해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겠다[71].

 

C. 그리스도는 율법의 telos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목표" "완성"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문맥이나 의미를 고려해 telos "마침"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9:30 이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기술되었다. , 과거에 ""또는 "율법" 추구했느냐 여부에 관계없이 "현재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기준에 따라 구원이 결정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의 방향으로 설명이 되고 있고 중점은 현재에 있다). 이와 달리 10:1 이하는 이스라엘의 현재 믿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구원과 관련한 상태를 진단하고 설명하고 있다. 불신앙이라는 현재의 입장에서 살핀 이스라엘의 지금까지 총괄적인 행적은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관찰) 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이 없었고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 했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음"이다 (2-3).

             이스라엘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데에 있다. 그들은 행위를 그리고 자기의 의를 추구했었다. 이들이 구원사에 편입되는 길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는 것이다. 바울이 4절에서 해결책으로[72] 제시한 내용인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telos 되심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의를 이루게 하시는 "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73]. 그런데 여기서 가지 생각해 봐야 것은, 이스라엘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9:32a)" 구절에서 행위에 의지했다는 말을 "율법의 행위를 추구했다" 동의어라고 있겠느냐는 것이다[74].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telos"라고 , 의미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추구하는, 믿음이 아닌 행위에 의지하는, 다시 말해 율법의 행위를 추구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폐기하심으로 "의를 이루시게 하셨다 (10:4)" 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해에 장애가 되고 있는 점은 4 전의 부분에서 단어 "율법" 비판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31절의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이라는 설명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종교적 삶의 방식을 단적으로 압축한 중립적인 표현이다. 32절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제시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이 믿음이 아닌 행위를 좇았기 때문이다. , 율법 자체의 어떠한 문제나 결함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이유로 제시된 32절의 "행위에 의지했다 (evx e;rgwn ex ergon)"에서 율법과 관련된 "율법의 행위" 연상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태도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9:30ff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행위를 추구한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고 (율법 비판이 아니라) 10:1ff에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에 대해 잘못된 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판결하고 있다. 따라서 4절에서 등장하는 단어 "율법" 앞의 내용에 근거해서는 (9:30-33) 부정적인 뜻으로 간주할 없다[75].

             4절의 "율법" 부정적으로 있게 하는 근거는4 앞부분이 아니라, 다른 곳의 구절이 제공한다. 빌립보서 3:9에서 바울은 자신의 의가 율법에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한다[76]. 여기에 따르면 에는 종류가 있고 둘은 서로 대립된다는 사고가 바울에게 있다는 것을 있는데, 이는 우리가 다루는 본문 10:4 다음에서도 나온다 ("율법의 " vs "믿음의 " 5f)[77]. 여기서 바울은 ""라고 "율법" 아닌 "믿음" ""여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바로 이점이 3절의 "" 4절의 "율법" 관계를 올바르게 해명하는 열쇠라고 하겠다. 가지 종류의 ""라는 관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행위에 의한 (9:32) 율법의 의를 (10:5) 추구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이었다. 그들은 믿음의 의를 추구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율법의 의는 거부되어져야 하는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를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종지부를 찍으심으로 "율법의 "라고 하는 옳지 못한 방식을 추구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올바른 의를 따르게 함으로서 이제는 그들도 구원을 얻을 있게 하신 것이다[78]. 이같은 이해는 율법이 그리스도와 배타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로마서 3:21f, 갈라디아서 2:21b 등과 내용이 부합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으로 잘못된 의를 추구하던 이스라엘에게도[79] 믿음의 의가[80]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치사 eivj (eis) 일부 학자들이[81] 율법을 수식한다는 주장과 달리 "목적"이나 "결과" 의미로서[82] 앞의 전체 진술에 걸린다고 하겠다[83]. eis 이하의 부분은 자기의 의를 추구함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제외된 이스라엘 까지도 그리스도의 구속행위로 (율법의 폐기) 말미암아 구원의 경륜에 포함되게 되며, 결과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 유대교에서는 세계의 역사를 각각 2000 간의 혼돈의 시대, 토라 시대 그리고 메시아 시대로 나누기도 하는데[84] 바울은 이같은 유대교의 역사이해를 수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메시아 시대의 시작이고 따라서 토라 시대는 종언을 고한 것이라고 봤다는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한다[85].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펴고 있는 자들이 제시하는 구절 차체는 전체 토라의 마침이 아닌 정결법 일부 율법이 폐기됨을 말하고 있다[86] (Sanh 97a Bill I 73, 247[87]). 그리고 랍비-유대교는 토라가 폐지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88]. 그러므로 메시아 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율법이 종결된다는 사고는 랍비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봐야 옳다[89]. , 당시 유대교 내에는 메시아의 시대와 관련하여 그리스도를 토라의 마침으로 이해할 있는 사상적인 근거가 존재했었고, 바울은 이에 동의하여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으로 보았다는 의견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다.

 

D. 그리스도는 율법의 telos - 의미

 

             그리스도에 의해 율법이 폐기됨으로써, 믿음의 의가 이스라엘 아니라 믿는 모두에게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의 "율법의 마침"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바울 전체의 사고에 비추어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불트만(R. Bultmann) 따르면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는 의미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경건한 자의 모든 노력(율법주의) 종결이다[90]. , 율법을 완성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인간의 의도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없다고 뿐만 아니라 (율법의 의를 통한 자기실현과 반대인)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기 때문에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러서도 안된다고 한다. 한편 빌켄스(U. Wilckens) 모세의 율법은 죄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데에 반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화해의 죽음을 통해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는 분이시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한다[91]. 이와 달리 루츠(U. Luz) 그리스도께서 외부에서 부터 율법에 대한 낯선 자로서 율법에 대해 다가와 율법을 종결에 처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이해한다[92]. 산데이/ 헤드람(Sanday /Headlam)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유대인에 의해 추구된 율법을 통한 의를 획득하는 방식이 종언을 고했다고 본다[93]. 케제만(E. Käsemann) 하나님을 참되다 하기위해 인간의 의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모세의 율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언을 고했다고 한다[94]. 김세윤은[95] 로마서 2:12-3:26 연관하여 해석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았거나 지킬 없었기 때문에 의를 얻는데 실패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를 얻으려는 모든 시도의 마침을 뜻한다. (D.J. Moo) 따르면[96] 그리스도는 구속사의 시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신 분이다. 시대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의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간과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성한 분이시요 또한 율법 시대를 끝내신 분이기도 하다는 의미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telos" 이해한다.

             로마서 9-11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연관된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이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룬 단락에서 바울은 잘못된 의를 추구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에 이를 있을 지를 다룬다. 바울은 "율법" "" 교대로 (엇박자로) 사용하고 있다. 9:30 이방인들에 대한 언명에 대해 31절이 대구를 이루려면 "이스라엘은 의를 좇았으나 의를 얻지 못했다" 내용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율법" 이용하여 말하고 있다. 10:3에서는 이를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기의 vs 하나님의 ). 그리고는 4절에서 다시 율법을 말한다. 여기서 그가 제시한 방안은 그리스도에 의한 율법의 telos이다. 바울의 전체 사상에 비추어 , (1) 그리스도와 율법은 서로 배타적, 대립적인 관계이다 ( 7:4; 2:21, 3;23ff, 4:1ff). (2) 율법은 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없다 ( 3:11,21). (3) 빌립보서 3:9 로마서 10:5f 참고할 "율법의 " "믿음의 " 대립되는 것으로,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의를 통해서"이다 ( 3:21). 이상을 통해 있듯이 이스라엘이 현재 구속사에서 제외된 것은 율법의 의를 추구했기 때문인데 (5f) 이는 다름아닌 자기의 의를 세우려 것이다 (3). 따라서 율법은 그리스도에 의해 telos되어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다 (4)[97]. 바울은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는 방법은 "율법의 " 아닌 "믿음의 " 통함으로써 가능한데, 이를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지함으로써 , "율법의 "라는 방식을 거부하심으로 이루셨다. 바울은 이같은 진술 과정에서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한편으로 "율법"이라는 개념으로 (31ff), 다른 한편으로는 ""라는 개념으로 (3) 설명하고 있다.

             바울에게 율법은 원래 선한 것이었다 ( 7:12,14). 하지만 율법은 죄가 인간을 지배하는데 이용됨으로서 (7:8, 11), 결과적으로 악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 7:9f). 죄에 사로잡힌 인간은 이제 이상 율법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없게 되었다. 율법은 다만 죄를 알게 하거나 ( 3:20, 5:13, 7:13), 죄를 더하게 하고 ( 5:20, 3:19) 인간을 저주 하에 놓는다 ( 3:13).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기능을 상실하였다 ( 3:11, 21).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율법과는 다른 구원의 방편으로 오신 분이시다 ( 3:21). 이제 그분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시대는 끝이 났으며 ( 7:1-6, 2:18ff, 3:19, 23, 25) 율법의 지배로부터 인간이 해방되었다 ( 3:13; 4:5). 이같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telos, 율법의 마침이신 것이다.

 

나오는

 

             ""라는 관점에서 이방인과 이스라엘로 대별되는 인류사를 개괄하는 바울은 중간결산의 차원에서 "이방인은 믿었기 때문에 구원되었고 이스라엘은 행위를 추구했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하는데 (9:32a), 이것은 다름아닌 이방인은 믿음의 의를 추구했고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은 결과에서 연유된 것이다 (참고 9:30b; 10:5f). 이어서 (10:1ff) 바울은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면서 진단하기를 이스라엘은 지식이 없었고, 자기의 의를 추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4절에서 "율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율법" "믿음" 종류 ""라는 관점에서 , 올바른 의에 대한 문제는[98] 결국 율법 비판으로 귀결된다[99]. 이스라엘이 추구한 의는 행위에 의한 것으로, 자기 의요 그래서 "율법의 "였다[100]. "" 부정되고 지양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율법과 상관없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신 것이다 ( 3:21-26).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을 종결 짓는 역할을 하신다 (참고 고전 15:56f, 3:19, 23-29). 이를 통해 믿음의 의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론을 개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인류의 구원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의 관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믿음에서 (9:30b), 믿음의 (10:6) 이다.

(2) 이스라엘은 이방인들과 달리, 믿음이 아닌 행위를 통해 의에 다다르려 했기 때문에 구원을 이루는데 실패했다 (9:32f).

(3) 이스라엘은 믿음의 의가 아닌 율법의 의를 택했다 ( 3:9, 10:5f). 다시 말해서 자기의 의를 좇았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10:3).

(4) 그러나 그들도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telos[마침] 되심으로) 마침내 의에 이르게 된다 (10:4).

(5)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신 목적은 결국 (4 eis)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101].


참고문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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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us als Ziel, Vollendung oder Ende des Gesetzes? (Röm 10:4)

 

 

Cho, Gwang-Ho

Full-time Lecturer

Seoul Jangsin University and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Beim Verständnis des Gesetzes Pauli ist Röm 10:4 (“Christus ist telos nomou”) als eine wichtigste Stelle bekannt, aber dessen Bedeutung ist heftig umstritten. Mit dem ‘telos’ hat man zum einen “Ziel” im Auge, zum anderen “Vollendung” und zum dritten “Ende”.

Röm 9-11, zu dem unser Text (Röm 10:4) gehört, redet von dem Schicksal Israels. Das Heil hängt davon, ob man an Jesus Christus glaubt oder nicht. In diesem Sinne ist anzunehmen, daß Israel von der Heilsgeschichte Gottes ausgegliedert ist, weil es keinen Glauben an Jesus hat. Dabei taucht das Problem auf, nämlich Gott hat diesem durch seine Vorfahren die Verheißung gegeben. Wenn Israel von dem Heil ausgeschlossen wird, dann erweist sich: Gottes Wort ist nicht true. So ist die Rettung Israels unbedingt nötig, um die Treue Gottes unverletzt zu bleiben. Nach dem Urteil des Paulus hat zwar Israel Eifer für Gott aber steht auf dem falschen Weg. Es hat nach dem Gesetz der Gerechtigkeit (= eigene Gerechtigkeit) getrachtet, die nicht aus dem Glauben kommt. Im diesen Zusammenhang wird Christus 'telos' des Gesetzes.

Aus der Untersuchung der Verwendungsfälle von 'telos' ergibt sich, daß das Wort bei Paulus nicht mit dem Sinn "Ziel" vorkommt. Und unter Berücksichtigung von V. 5 sollte man das Wort "Gesetz" im V. 4 für negeativ halten. Das bedeutet: 'telos nomou' ist nicht mit "Ziel des Gesetzes" zu übersetzen. Bei diesem Passus (Röm 9:30-10:4) handelt es sich nicht darum, wie Israel gerechtigt zu werden durch die Erfüllung der Forderungen des Gesetzes, sondern darum, wie Israel die Gerechtigkeit durch den Glauben an Jesus Christus zu erreichen. Darum ist das Verständnis des 'telos' als "Vollendung" ebenfalls außer acht zu lassen.

Nach Meinung Pauli liegt das Problem Israels darin, daß es nicht an Jesus Christus glaubt. Es versucht, mit Gesetz zur Gerechtigkeit zu erlangen. Aber wenn man 2 Gerechtigkeiten (die aus dem Gesetz vs die aus dem Glauben) im Blick hat, ist es deutlich, daß das Problem "der Unglaube Israels" durch das zu-Ende-setzen des Gesetzes gelöst wird, das von Jesus Christus veranlaßt ist. Daraus kann man sagen, daß das Wort ‘telos’ vor allem "Ende" bedeutet.

 

 



[1] G. Bornkamm, Wandlungen im alten- und neutestamentlichen Gesetzesverständnis, 105, in: ders., Geschichte und Glaube, 2.Teil, Ges. Aufs. Bd IV, BEvTh 53, 1971, 73-119 (이하 G. Bornkamm, Wandlungen); O. Michel, Der Brief an die Römer, KEK 4, 141978, 327 (이하 Michel, KEK 4); D.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Michigan: Eerdmans Publishing Co., 1996) 636 (이하 Moo, NICNT); R. Bultmann,: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UTB 630, 91984, 264 (이하 R. Bultmann, Theologie); 차정식, «로마서 II» (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 37),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167 (이하 차정식, «로마서 II»)

[2] Th. R. Schreiner, Romans, ECNT 6 (Michigan: Grand Rapids, 1998) 544 (이하 Schreiner, ECNT 6); C.E.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Vol 1, 1982 (= 1975), 515 (이하 Cranfield, ICC, Vol 1); K. Haacker, Der Brief des Paulus an die Römer, ThHNT 6, 1999, 206

[3] nomos라고 혹자는 (W. Sanday/ A.C. Headlam,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1980 [= 51902], 284 [이하 Sanday/ Headlam, ICC]; 부분적으로 T. Zahn, Der Brief des Paulus an die Römer, KNT, 31925, 475f [이하 Zahn, KNT]) 이를 구약의 율법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원칙'이나 일반적 의미로서 '' 의미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여기서 율법은 구약의 율법을 지칭한다 (Cranfield, ICC, Vol 1, 515f; 참고 Moo, NICNT, 636)

[4] Cranfield, ICC, Vol 1, 516

[5] K. Haacker, "Ende des Gesetzes" und kein Ende? Zur Diskussion über te,loj no,mou in Röm 10,4, 131f in; K. Wengst u.a. (Hg.), Ja und nein. Christliche Theologie im Angesicht Israels. FS W. Schrage 1998, 127-138; 참고 U. Wilckens, Der Brief an die Römer, EKK 6/2, 21987, 222 (이하 Wilckens, EKK 6/2)

[6] W. Bauer, Griechisch-deutsches Wörterbuch zu den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und der frühchristlichen Literatur, Berlin u New York 61988, s.v. (이하 W. Bauer, Wb)

[7] G. Delling, Art. te,loj ktl., ThWNT 8, 55ff

[8] NJB fulfilment라고 번역한다

[9] Michel, KEK 4, 326; P. Althaus, Der Brief an die Römer, NTD 6, 81954, 97; Zahn, KNT, 475f; H.W. Schmidt, Der Brief des Paulus an die Römer, ThHNT 6, Berlin 1962, 175 (이하 Schmidt, ThHNT 6); H. Schlier, Der Römerbrief, HThK 6, 1977, 311 (이하 Schlier, HThK 6); E. Käsemann, An die Römer, HNT 8a, 41980, 273 (이하 Käsemann, HNT 8a); Sanday/ Headlam, ICC, 283f; C.H. Dodd,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MNTC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47), 165; G. Bornkamm, Wandlungen, 106 77; D. Zeller, Juden und Heiden in der Mission des Paulus. Studien zum Römerbrief, FzB 1, 1973, 244 (이하 D. Zeller, Juden); U. Luz, Das Geschichtsverständnis des Paulus, BEvTh 49, 1968, 141 (이하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J.D.G. Dunn, Commentary Romans, WBC 38B, (Dallas: Word Books Publisher, 1988) 596f (이하 Dunn, WBC 38B); E.P. Sanders (김진영 ), «바울, 율법, 유대인»,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 1994), 82,86 (이하 E.P. Sanders, «바울, 율법, 유대인»); 김세윤, «바울신학과 새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 (서울: 두란노, 2002) 52,79,137,250 (이하 김세윤, «새관점»)

[10] Cranfield, ICC, Vol 1, 519; G.E. Howard, Christ the End of the Law: The Meaning of Romans 10,4ff., JBL 88, 1969, 331-337, 336f; R. Badenas, Christ The End of the Law. Romans 10:4 in Pauline Perspective (JSNT Suppl. Ser. 10; Sheffield: JSOT, 1985), 147 (이하 R. Badenas, Christ); S.R. Bechtler, Christ The te,loj of the Law: The Goal of Romans 10:4, CBQ 56 (1994) 288-308, 298ff (이하 S.R. Bechtler, Christ); Th.H. Tobin, S.J., Romans 10:4: Christ the Goal of the Law, 273, 276 in; The Studia Philonica Annual. Studies in Hellenistic Judaism, Vol. 3 (1991) 272-280 (이하 Th.H. Tobin, Romans 10:4)

[11] Irenaeus, adv. Haer iv,12,4 ("그리스도는 율법의 시작이자 마침"); Hippolytus, Discource of the Holy Theophany 5; Luther, 147 "성서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해한다; J. Calvin (tr. R. Mackenzie), The Epistles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and to the Thessalonians, (Michigan: Grand Rapids, 1980 [= 1973]) 221f (이하 Calvin, Romans); Moo, NICNT, 636; O. Cullmann, Christus und die Zeit. Die urchristliche Zeit- und Geschichts-Auffassung, Zürich 31962. 132

[12] Origen "율법의 완성이자 그리스도는 의이시다" 풀어 설명하는 한편 (Ruf. 1160B) 자신의 주석에서는 "마침" "목표' 의미로 본다; C.K. Barrett, The Epistle to the Romans (rev. ed.), Black's New Testament Commentary (London: Hendrickson Publishers, 1991) 184 (이하 Barrett, Romans) ( 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도); Moo, NICNT, 639ff (마침의 의미에 중점을 두면서도); F.F. Bruce: 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 (rev. ed.), Tyndale New Testament Commentaries (Michigan, Grand Rapids, 1985), 190; Wilckens, EKK 6/2, 221ff; S. Westerholm, Paul and the Law in Romans 9-11, 233, in; J.D.G. Dunn (ed.), Paul and the Mosaic Law, The Third Durham-Tübingen Research Symposium on Earliest Christianity and Judaism (Durham, September, 1994) WUNT 89 (Tübingen: J.C.B. Mohr: Tübingen, 1996) 215-237 (이하 S. Westerholm, Paul)

[13] Clement of Alexandria, Strom. 2,42,5; 4,130,3; 6,94,6; John Chrysostom, col. 565; Euseb. (Demomstratio Evangelica, 8,2.33) 5:17 의미처럼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표라고 한다; E.E. Schneider, Finis Legis Christus, ThZ 20, 1964, 410-422, 420; P.v.d. Osten-Sacken (Die Heiligkeit der Tora. Studien zum Gesetz bei Paulus, München 1989, 35, 40 [이하 P.v.d. Osten-Sacken, Heiligkeit]) "목표" 비중을 둔다

[14] 차정식, «로마서 II», 167, 169 telos '마침'으로 보면서도 '완성'으로 번역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15] Schreiner (ECNT 6, 26f) 9-11 ("이스라엘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 크게 부분으로 나눈다: 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 (9:1-29), 2.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를 거부한 이스라엘 (9:30-11:10), 3.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위한 계획 속에서의 하나님의 (11:11-32), 4. 결론적인 송영 (11:33-36)

[16]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30f) 크게 9:30-10:3 "정황에 대한 묘사", 10:4(10:5-13) "논제에 이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부설" 그리고 10:14-21 "현재 상황에 대한 부설로 부터 나온 요약"으로 분류한다. Schreiner (ECNT 6, 26, 535) 9:30-11:10 전체의 (9-11) 번째 단락으로 보는 가운데, 9:30-10:4 부분 중의 (9:30-10:13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 전반부로 (이스라엘을 의를 얻는데 실패함) 본다

[17] W.G. Kümmel,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Heidelberg 211983, 268

[18] 여기서 바울은 율법은 하늘이나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으며,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강변하는 30:11-14 인용한다. 하지만 그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율법을 가지고 내려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으로, 바다 밖으로 가는 것은 (바울 본문은 음부로 내려가는 것으로 바뀜) 율법을 가지고 오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으로 묘사한다.

[19]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사고는 이미 9:10ff에서 언급되었다

[20] 이와 유사한 사고가 11:30에도 나온다

[21] F. Lang (Erwägungen zu Gesetz und Verheißung in Römer 10,4-13, in; Ch. Landmesser, u.a. [Hg.], Jesus Christus als die Mitte der Schrift. Studien zur Hermeneutik des Evangeliums. FS O. Hofius [BZNW 86], 1997, 579-602, 579f)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다" 사고가 9-11 이해하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2]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 약속의 신실함을 강조한다 (9:6, 11:1-2, 11:29)

[23] Michel, KEK 4, 320; S.R. Bechtler, Christ, 292; S. Westerholm, Paul, 226f

[24] Schreiner (ECNT 6, 536) 그들이 믿게 궁극적인 근거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든다

[25] 이와 비련될 만한 구절로 Dunn, WBC 38B, 581 솔로몬 지혜서 2:11 든다

[26] 여기서 법은 토라를 가리킨다 S.R. Bechtler, Christ, 292; R. Badenas, Christ, 102f; Cranfield, ICC, Vol 1, 508; Moo, NICNT, 624

[27] Schreiner (ECNT 6, 539) 의를 obj. gen.으로 보고 의의 율법을 "의를 위한 율법" 뜻으로 이해한다. C.K. Barrett, Romans 9:30-10:21 Fall and Responsibility of Israel. Essays on Paul (Philadelphia: Westerminster Press, 1982) 140 속격 dikaiosynes 성질의 속격으로 보고 기능적으로 7:12 dika,ia (dikaia 의롭다) 같은 것으로 본다. S. Westerholm, Paul, 232 이와 유사. 이와 달리 S.R. Bechtler (Christ, 293) 30절과 대비하면서 목적이나 결과의 속격으로 보아, "의에 이르는 율법"으로 이해한다.

[28] 예를 들면 S.R. Bechtler, Christ, 293; R. Badenas, Christ, 103f. Wilckens 의하면 (EKK 6/2, 212 944) 행위로 의를 완성하는 자에게 의가 의로운 존재라는 구원의 상태를 베풀어 준다는 의미에서 의는 토라의 내용이다. , 의의 율법이란 요구나 약속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를 가능케 함을 뜻한다. 한편 Käsemann (HNT 8a, 268) C.Th. Rhyne (Nomos Dikaiosynēs and the Meaning of Romans 10:4, CBQ 47 (1985) 486-499, 489 [이하 C.Th. Rhyne, Nomos]) 의의 관점에서 , 의를 요구하거나 이를 약속하는 구약의 율법이라는 의미로 "의의 율법" 이해한다 이와 유사하게 H. Lietzmann (An die Römer, HNT 8, 31928, 94) 율법을 완성하는 자에게 의를 약속하는 (2:13) 율법으로 이해한다. 이와 달리 Schlier 따르면 (HThK 6, 307) 표현은 의를 요구하는 유대 법을 의미한다. 한편 Schmidt (ThHNT 6, 172) 용어를 유대적인 경건추구가 잘못된 방식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29] 혹자는 의의 율법과 율법의 의를 같은 뜻으로 보지만 (예를 들면 Calvin, Romans, 217 [환치법의 일한으로]; W. Schmithals, Der Römerbrief, Gütersloh, 1988, 363;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57) 이는 단어의 연결이 반대로 것을 도외시한, 너무 단순한 생각이라고 하겠다. 참고 Schreiner, ECNT 6, 537

[30] 행위에 의지했다는 말은 따라서 율법비판과 직접 연관된 표현이 아니다. w`j 행위가 거짓된 것임을 말한다 (W. Bauer, Wb, w`j, III.3; Käsemann, HNT 8a,, 268; C.Th. Rhyne, Nomos, 490; S.R. Bechtler, Christ, 295)

[31] Dunn, WBC 38B, 581; R. Badenas, Christ, 103f; C.Th. Rhyne, Nomos, 489.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음을, 따라서 율법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Schreiner, ECNT 6, 536; Käsemann, HNT 8a, 268).

[32] 일부 사본에서는 (a2 D Y 33 ÷ vgms sy) 32절에서도 단어 "율법" (e;rgw no,mou ergo nomou) 나온다

[33] 또한 10:3에서 이스라엘의 의에 대해, 4절에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 9:30-10:4에서 핵심 개념이라고 있다

[34] 유대인은 율법을 추구했다는 말은 따라서 구원을 위해 유대인이 노력해왔던 지금까지의 삶을 총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구절은 율법비판과 관련이 없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믿음이 아닌 잘못된 길을 택했다 (Wilckens, EKK 6/2, 213; R. Badenas, Christ, 293ff; C.Th. Rhyne, Nomos, 490; 유보적으로 Schreiner, ECNT 6, 539)

[35] 32f절은 30f절에서 거론된 구속사적인 역설의 근거이다 (D. Zeller, Juden, 189; 참고 Schlier, HThK 6, 307)

[36] C.Th. Rhyne (Nomos, 489) 따르면 잘못된 관점으로 부터 율법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37] Schlier, HThK 6, 307

[38] 구절은 반앗시리아 동맹을 통해 국가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믿는 이스라엘 지도층의 잘못된 사고를 예언자 이사야가 질책하는 구절 중의 일부로서 이사야는 대안으로 여호와에 의해 시온에 놓여진 귀중한 모퉁이 돌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믿음을 말하고 있다. LXX 28:16bb evpV auvtw/| 추가함으로써 메시아적인 관점으로 해석한다 (참고 20:18; 고전 10:4)

[39] G. Stählin, Skandalon. Untersuchungen zur Geschichte eines biblichen Begriffs, BFChTh.M 24, 1930, 261ff; Käsemann, HNT 8a, 269

[40] Ch. Dietzfelbinger, Die Berufung des Paulus als Ursprung seiner Theologie, WMANT 58, 21989, 37ff (이하 Ch. Dietzfelbinger, Berufung)

[41] Schreiner 따르면 (ECNT 6, 531) 부분은 " 이방인은 믿고 이스라엘은 믿지 못했는지 9:30-33" 계속 확대해서 다룬 것이다

[42] 단어는 ("열심") (고후 7:7, 11, 9:2, 11:2) 막하비 시대 이래 유대권에서 유대인들의 신앙 전통수호와 관련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된 개념이다 (유딧 9:4, 막하비 2:58, 시편LXX 68:10, 시편LXX 118:139; 참고 2:17, 21:20). Philo (Spec. Leg 2,253) zhlwtai. no,mwn (zelotai nomon, 율법의 열심당) 조상들의 제도를 엄격히 수호하며 제도들을 파괴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단어로 표현한다 ( 1:14, 3:6). 단어 자체는 부정적이 아닌,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열심의 맹목성이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문제이다. Michel, KEK 4, 325 4;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31; 참고 R. Bultmann, Theologie, 225f

[43]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려 했던 노력 (9:31f)

[44] evpi,gnwsij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인정하면서 순종하는 인식으로서의 gnw/sij이다 (R. Bultmann, Art. ginw,skw ktl., ThWNT 1, 688-719, 707,8f)

[45] 헬라어 ivdia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장본인이란 (Urheber/ source) 뜻이다 (D. Zeller, Juden, 191f; Moo, NICNT, 634)

[46] 자기의 의란 Michel (KEK 4, 325) 따르면 자기의 행위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심판자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인간적인 시도이다; 참고 Moo, NICNT, 634f

[47] 이스라엘은 구원이 하나님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하나님의 의란 인간의 행위를 전제하지 않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자비에 근거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이다. 따라서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된다. 사실을 간과하고 행위를 통한 자기의 의를 이루려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48] J.D.G. Dunn, Paul and Justification by Faith, 92, in; R.N. Longenecker (ed.), The Road from Damascus. The Impact of Paul's Conversion on His Life, Thought and Ministry, (Michigan/Cambridge, Grand Rapids, 1997) 85-101; Dunn, WBC 38B, 596; E.P. Sanders, «바울, 율법, 유대인», 80

[49] Moo, NICNT, 634

[50] 김세윤, «새관점» 136.244

[51] 4절은 Dunn (WBC 38B, 596) 따르면 이스라엘이 지식이 부족한 것과 하나님의 의를 무시한 것에 대한 계속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며 또한 다음의 논증 국면을 위한 변환을 준비하는 것이다

[52] W. Bauer, Wb, ga,r, 304f

[53] Sanday/ Headlam, ICC, 284; 참고 Schreiner (ECNT 6, 547) because 아닌 since 이해한다

[54] Sanday/ Headlam, ICC, 284; Barrett, Romans, 184; Moo, NICNT, 636; S.R. Bechtler, Christ, 298; C.Th. Rhyne, Nomos, 486, 492; Wilckens, EKK 6/2, 221. Wilckens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잘못된 지식이 문제인지 이유를 4절에서 밝힌다

[55] Th.R. Schreiner, Paul's View of the Law in Romans 10:4-5, WTJ 55 (1993) 113-135, 122 따르면 4절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의에 복종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한다 (이하 Th.R. Schreiner, View)

[56] 이는 9:33 구약인용 "시온의 " 부분에서 미리 등장한다

[57] telos 그리스 문화권에서, 그리고 LXX 신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 지에 대해서는 Moo, NICNT, 630 R. Badenas, Christ, 38-80 참조

[58] 여기서도 시간의 의미 내지 역사의 끝을 의미하는 종말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Schreiner, ECNT 6, 545f; W. Bauer, Wb, te,loj)

[59] Moo, NICNT, 638 37 R. Badenas, Christ, 73 구절에서 telos "결과" 의미로 이해한다. R. Badenas, Christ, 78f telos 주로 목적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Th.R. Schreiner, View, 117ff 보라

[60] W. Bauer, Wb, te,loj, 1.b

[61] W. Bauer (Wb, te,loj 1.d, 2) 고전 15:24 telos "나머지" 또는 "끝으로"라는 뜻으로 수도 있다고 한다

[62] Th.R. Schreiner, View, 119; 참고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40

[63] 한편 동사 tele,w (teleo) 바울서신에서 1) 마치다, 완성하다 (고후 12:9), 2) 이루다, 성취하다 ( 2:27, 5:16), 3) 세금을 낸다 ( 13:6) 등의 뜻으로 모두 4 사용되고 있다

[64] S.R. Bechtler, Christ, 292; Th.H. Tobin, Romans 10:4, 273, 276f; 참고 R. Badenas, Christ, 101

[65] 참고 Moo, NICNT, 639f; Schreiner, ECNT 6, 545; P.v.d. Osten-Sacken, Heiligkeit, 33ff

[66] 2 바울 서신 유일하게 딤전 1:5에서 telos "목표" 뜻으로 사용한다

[67] 이에 대해서는 아래 II.C에서 자세히 다룬다

[68] Wilckens, EKK 6/2, 223; 참고 Cranfield, ICC, Vol 1, 516ff

[69]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고 S.R. Bechtler, Christ, 292)

[70] 8: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으로 부터 해방된 인간은 결국 율법의 요구를 이룬다는 의미이지 율법의 요구를 이룸으로써 구원된다는 논지가 아니다

[71] 한편 D. Zeller (Juden, 193) 10:5f 근거로 telos 완성으로 없다고 한다

[72] D. Zeller 의하면 (Juden, 193) 10:4 유대인들이 자력으로 의에 도달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73] Schreiner (ECNT 6, 546) 따르면 4절에서 바울은 복음과 율법에 대한 포괄적인 서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바울은 3절에서 거론된 유대인의 특별한 잘못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한 의를 위해 율법 사용의 마침이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을 사용하는 것을 그만둔다고 보았다

[74] Schlier, HThK 6, 307

[75] 예를 들면 C.Th. Rhyne (Nomos, 492) 유대인들도 그리스도 믿으면 의의 율법을 얻을 있다. 따라서 10:4 돌연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라고 읽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76] Schlier, HThK 6, 310

[77] 참고 Sanday/ Headlam, ICC, 283.285; Wilckens, EKK 6/2, 222;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31

[78] 그러므로 telos 의미 개가 동시에 함축되어있다고 보는 견해도 (예를 들면 마침+목표, 마침+완성, 목표+완성) 제외되어야 한다

[79] 율법이 폐지되어 행할 필요가 없으므로 (참고 5)

[80] 이는 이미 9:30b에서 언급

[81] 참고 Moo, NICNT, 636f

[82] 참고 Moo, NICNT, 637f. Badenas (Christ, 302 52) "결과' 본다

[83] Käsemann, HNT 8a, 273; C.Th. Rhyne, Nomos, 493 21

[84] Sanh 97a (Bill. III 826)

[85] L. Baeck, Der Glaube des Paulus, 584ff, in; K.H. Rengstorf (Hg.), Das Paulusbild in der neueren deutschen Forschung (WdF 24), 1964 565-590 (= ders, Paulus, die Pharisäer und das Neue Testament, Frankfurt a.M. 1961 7-37); H.-J. Schoeps, Paulus. Die Theologie des Apostels im Lichte der jüdischen Religionsgeschichte, Tübingen 1959 (= 1972), 177ff; Ch. Plag, Israels Wege zum Heil. Eine Untersuchung zu Römer 9 bis 11, AzTh 1.R. H.40, 1969, 20ff (이하 Ch. Plag, Wege); 그리고 Diezfelbinger (Berufung, 119) 메시아 시대에 모세-토라는 가치를 잃게 되고 메시아-토라가 효력을 발생한다는 맥락에서 10:4 이해한다

[86] Wilckens, EKK 6/2, 223f; Plag, Wege, 23f;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44

[87] 참고 Ch. Plag, Wege, 23f 64-66

[88]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44; Bill I 245

[89]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44; D. Zeller, Juden, 194. 그리고 양보한다 하더라도 Sanh 97a 만이 제시될 있는 유일한 전거이다 (전도서 12,1 im Mdr Qoh (53a), Bill I 73. 247); 참고 Ch. Plag, Wege, 23; Th.R. Schreiner, View, 115

[90] R. Bultmann, Theologie, 264,268

[91] Wilckens, EKK 6/2, 222

[92] U. Luz, Geschichteverständnis, 141. 그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으나 믿는 이방인과 율법을 의지하는 유대인 간의 대립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율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157)

[93] Sanday /Headlam, ICC, 283

[94] Käsemann, HNT 8a, 273

[95] 김세윤, «새관점», 137

[96] Moo, NICNT, 641f

[97] 3-6절에서 일련의 개념들이 ("자기의 " - "율법" - "율법의 ") 각각 대구를 이루며 "하나님의 " - "그리스도" - "믿음의 " 대립되고 있다고 있다. 따라서 4절의 율법과 그리스도는 서로 반대 의미이다.

[98]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을 통해서냐 믿음을 통해서냐는 문제는 3:11에서 다루어 지고 있다

[99] Käsemann, HNT 8a, 273

[100] Schreiner, ECNT 6, 531

[101] 단락에서 과거 이방인들은 믿지 않았지만, 현재는 믿음의 의에 이르렀음과 과거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했지만 믿지 않음으로써 현재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종국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도 의로워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 시점을 가지고 그들의 구원을 논하는 (구원의 보편성 문제) 예는 11:30-32에서도 있다 (여기서는 신론의 입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