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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예루살렘교회와의 관계

-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중심으로



조광호

<요약>


용어 관찰을 통해 보면 모금은 의무나 법적인 차원의 요구라기 보다는 자발적인 사랑에 기초한 행위이다. 모금약속은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과로 생겨났다. 여기서 바울과 예루살렘교회 간에는 동역자라는 의식이 생기게 된다(2,9d). 모금은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바울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 둘 간에는 분명한 신학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바울은 동역자로서 예루살렘을 염두에 두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울은 결코 예루살렘을 자신보다 우위의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롬 15,19b; 15,27b 등의 구절은 바울과 예루살렘이 하나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모금은 긴급한 구호행위가 아니다. 바울이 스페인 선교여행을 앞두고 생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또한 예루살렘 교인들이 모금을 거부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금을 전하러 간다는 점에서 방문 목적이 어느 정도 곧 있을 스페인 여행과도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 <요약 끝>



1. 들어가면서


본 글은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를 모금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모금에 관한 용어를 살펴보고 모금의 형성과 발전, 종결 등을 시간 순으로 고찰하여 바울과, 초대교회사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관계를 보다 귀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의 성격에 관해서는 상이한 여러 견해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모금을 초대교회가 이방인교회에 부과하는 교회세와 같은 종류의 법적인 차원의 요구라고 본다.1) 어떤 이들은 유대교의 종교세와 연관시킨다.2) 혹은 경제적인 지원의 의미로 모금을 이해하기도 한다.3) 자발적인 선물,4) 시혜 성격의 선물,5)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를 연결시키는 선물로6)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휴머니즘적이자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는 하나의 시도로7) 혹은 종말에 예루살렘에 이방인들이 예물을 드리는 것이 실현된 것으로8) 아니면 종말론적인 이방(기독교)인들의 순례9) 또는 상호 인정의 표시나10) 다양성의 상징11) 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견해와 관련하여 우선 모금에 대한 용어들을 살펴봄으로써 모금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2. 모금에 관한 바울의 용어들


a. ■■■■■■■■■


이 표현은 모금을 지칭하는 용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롬 15:31; 고후 8:4; 9:1.12.13 그리고 롬 15:12; 고후 8:19.20 ■■■■■■■■■). 일반 그리스어의 의미는 “식탁에서 대기한다”, “먹고 사는 것을 배려한다.”는 뜻에서 더 나아가 “봉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12) 바울은 한편으로 자신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종으로 (■■■■■■■■) 이해하며 (롬 15:8; 고후 3:6; 6:4; 11:23) 다른 한편으로 교회를 위한 종으로 (고전 3:5) 이해한다. 바울의 섬김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롬 11:13; 고후 3:3.8.9; 11:8) 돕는 일로(롬 12:7) 이루어 진다.

바울은 이 단어군을 (■■■■■■■■■) 특별히 자주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여기에는 ‘종이 주인에게 행하는 의무’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이 단어군은 은혜, 은총, 자비의 뜻인 ■■■■■와 종종 결합되어 나온다(고후 8:4.19).


b. ■■■■■


이 단어는 바울 서신에서 67회 (신약에서 156회) 등장한다. 바울은 이 단어로 모금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단어 자체가 말해 주듯이13) 우리는 모금이란 호의와 사랑에 기초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14) 이는 고후 8:7f에서 확인된다(또한 8:24에서도).

 

c. ■■■■■■■■■, ■■■■■■■■■


이 단어군은 특별히 바울에게서 많이 나온다(13회, 전체 신약성서에서 20회 사용). 바울은 이 단어군을 가지고 믿음과 기독교적인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표현하는 바, 이 단어는 또한 모금과 관련하여 사용된다(롬 15:26, 고후 8:4; 9:13).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예루살렘교회가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 둘 간에 파트너 관계가 생긴다(“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갈 2:9). 바울은 평생 이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바울의 모금을 위한 노력은 이 관계의 구체적인 증거이다. 그러므로 모금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라는 단어는 ‘경제적인 도움’보다는 ‘공동체 관계’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15) 동사 ■■■■■■■■■도 이러한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롬 12:13; 15:27; 갈 6:6; 빌 4:15).


d. ■■■■■■■


이 단어는 그 어원이 ■■■■■에 있으며 의미는 “모금”, “돈을 모음”, “비정규적인 세금” 등의 뜻이 있다.16) 신약에서 이 단어는 고전 16,1f에 단지 두 차례 쓰이고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모금은 세금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자발적인 저축이다(참고 고후 8:8.12; 9:7).


e. ■■■■■■■■■


이 단어는 신약에 16회 나오고 그 중 바울은 8회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신약의 많은 곳에서 이 단어는 근본적으로 ‘축복’과 깊은 연관이 있다.17) 바울에게서 이 단어는 “선물”의 의미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과 관련하여 4회 등장한다(고후 9:5f).


f. ■■■■■■■■■


이 용어의 뜻은 “호의”, “기꺼이…할 용의가 있음”, “선한 뜻” 등이다.18) 이 용어는 신약에서 5회 나오는데 행 17:11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의 모금텍스트에서 사용되고 있다(고후 8:11.12.19; 9:2). 이 용어가 뜻하는 대로 고린도 인들은 바울의 모금 권면에 따라 기꺼이 모금을 모을 준비와 자세가 갖추어져 있었다(고후 8:12; 9:2). “마음에 원하던 것”(■■■■■■■■■■■■■■■■■■■■■■■)이라는 구절에서 보듯이(8:11) 그들은 모금을 자발적으로 했다(롬 7:15f: 갈 5:17; 몬 14). 이 외에도 고후 8:19에 ■■■■■■■■■ 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기서 바울은 마케도니아인들의 모금은 한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의 모금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말해 ■■■■■■■■■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강요되지 않고 기꺼이 준비가 된 고린도 교회의 돕는 자세를 뜻한다. 


g. ■■■■■■■■■■■: ■■■■■■■■■■■


■원래 제의적인 의미였던19) 단어군 ■■■■■■■■■■■가 모금을 위한 용어로 사용된다(고후 9:12; 롬 15:27). 고후 9:12에서 바울은 넓은 의미의 제의수행의 의미로 예루살렘인들을 위한 모금을 지칭하여 이 용어를 쓰고 있다(참고 롬 15:16). 로마서 15장 27절에서 바울에 따르면 이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대해 빚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즉, 단어군 ■■■■■■■■■■■에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이방기독교인들의 의무라는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h. ■■■■■■


모금은 ■■■■■■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한다(롬 15:28). 이 단어는 바울 서신에서 아홉 차례 등장한다(롬 1:13; 6:21.22; 15:28; 고전 9:7; 갈 5:22; 빌 1:11.22; 4:17). ■■■■■■로 바울은 자신의 선교적인 성공을 설명하기도 하고(롬 1:13; 빌 1:22) 선교사는 농부로서 자신의 경작지에서 생산된 열매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비유적인 언명에서도 이 단어는 사용된다(고전 9:7).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권면의 의미에서도 등장한다(갈 5:22; 롬 6:22; 참고 빌 1:11; 4:17).

모금을 말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위에서 지적한 바울의 ■■■■■■ 사용 용례에 비추어 볼 때 모금은 한편으로 이방 기독교인들의 의무이며 (이에 합당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의 선교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i. 기타 (■■■■■■■: ■■■■■■■■: ■■■■■■■■■)


그 이외에도 ■■■■■■■가 모금의 용어로 사용된다(고후 8:8.24; 참고 7절). 모금은 여기서 고린도 교회가 사랑이 있느냐 하는 데 대한 중요한 준거로(8:8) 사용되거나 고린도 교인의 사랑에 대한 확증의 역할을 한다(8:24).


모금을 나타내는 ■■■■■■■■라는 단어도 ("충만", "풍부") 사용된다(고후 8:20). 이는 신약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데 단어 자체가 의미하듯이20) 모아지는 헌금의 총액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라는 단어군도 모금과 연관하여 빈번히 등장한다. 동사 ■■■■■■■■■는 신약성서에서 11회 나오는데 이중 2회 바울 서신에서 사용되고 있다(갈 2:10; 살전 2:17). 이 중 갈라디아서 2장 10절은 잘 알 듯이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간에 모금약속을 체결하는 구절이다.

명사 ■■■■■■■는 신약성서에서 12회 나온다. 그중 7번 바울서신에서 사용되는데 (롬 12:8.11; 고후 7:11.12; 8:7.8.16) 특별히 바울의 모금 텍스트에서 집중하여 등장한다(고후 7:11.12; 8:7.8.16).

또한 신약성서에서 단지 3번 사용되는 형용사 ■■■■■■■■도 바울 서신 중 모금과 관련하여 모두 사용되고 있다(고후 8:17; 22[2회]). 단어군 ■■■■■■■■■가 모금과 관련되어 이처럼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모금활동을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라는 측면이 바울에 의해 강조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j. 요약


몇 부분을 제외하고(롬 15:27; 참고 15:28a) 모금을 나타내는 말 중에서 ‘의무’나 ‘법적인 차원의 요구’라는 측면은 발견되지 않는다.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은 자발적이고 기꺼이 그리고 사랑에 기초한 이방기독교인들의 행위이다. 여기서 둘 간의 연대의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모금의 발생과 발전 그리고 종결


a. 모금약속의 발생


모금 약속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과로 생겨났다(갈 2). 바울의 설득에 의해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인을 주 대상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선포하는 바울에게서도 똑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갈 2:7-8).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바울을 자신과 동등하다고 보게 되었다(상호 인정). 여기서 둘 간에 서로 같은 일을 하는 파트너이며 따라서 공동의 목표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식이 생기게 된다(2:9d).21)  그리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의 약속을 하게 된다(2:10).

이 모금약속은 비록 곧 이은 안디옥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따른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와의 긴장에도 불구하고(2:11-14) 바울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어떤 방식으로 모금을 할 지를 지시<고전 16:1ff>, 마케도니아인들의 모금<고후 8:3f>, 아가야 지역에 모금을 촉구함<고후 9:2ff>, 걷혀진 모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직접 갈 것을 선언<롬 15:25ff>).22)

모금약속 시에 “생각하는”(■■■■■■■■■■■■■)이라는 동사가 사용된 것은 매우 특이하다(갈 2:10). 이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모두 (21회) ‘경제적 지원’이라는 의미와는 관계없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동사는 아래의 곳에서도 나온다. 제2 막하비서 12:11, 솔로몬 지혜서 2:4, 솔로몬의 시편(Ps Sal) 3:3, 참고 예수 시락 37:6b: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전체 저작에서 발견되는 5번의 곳들(All I: 55.89; VitaMos II: 292; Virt 176; Aet 66),23) 요세푸스의 전체 저작에서 발견되는 37번의 곳들,24) 오딧세이 8:266f: 폴리비우스의 전체 저작에서 발견되는 26번의 곳들,25) 사도시대의 교부들 저작에서 (Ign Eph 2:1; 12:1: Ign Mg 14:1: Ign Sm 5:3: Barn 21:7. 이상에서 지적한 모든 곳에서 ■■■■■■■■■■■■■라는 동사는 재정적인 지원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갈 2:10에서 모금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항상 염두에 둠”26)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물론 다른 구절들과 (고후 7:13-9:15; 고전 16:1ff) “가난한 자들”이라는 표현을 고려할 때 ■■■■■■■■■■■■■이라는 행위에는 경제적인 지원이 포함된다고 하겠다. 


b. 모금행위의 발전


근본적으로 바울과 예루살렘교회는 신학적으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루살렘의 유대기독교인들은 율법이라든가 할례의 문제에 있어서 계속 유대 전통적인 입장을 따른다.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함께 율법이 말하는 것들을 동시에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바울은 이와 다르게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구원이란 인종적인 특성 (유대인)이나 종교적인 업적(율법을 지킴, 할례를 행함, 정결법 규정대로 삶)과 상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써 값없이 은혜로 받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바울과 예루살렘교회 사이에는 항상 이견과 불화의 소지가 잠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도 회의에서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복음의 파트너로 삼았을 때 이를 예루살렘교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50년 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정치적인 상황이 점점 급박해 지는 것과 병행하여 (헤롯 아그립바에 의한 [기원 후 41-44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의 처형 행 12:1ff; 참고: 주의 동생 야고보의 처형 기원 후 62년 Jos Ant 20:200: Eus: Hist Eccl: II:23:5) 예루살렘 교회도 주의 동생 야고보를 정점으로 하여 점차 보수화의 (친유대적) 길을 걷게 된 것처럼 보이며27) 따라서 바울과의 관계가 악화된다(참고 롬 15:31 b).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모금을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 이는 바울이 사도회의와 모금약속을 통해 성립된 상호인정의 정신에 충실했으며 계속 변치 않고 예루살렘교회를 신학적으로 동등한 상대자로 생각했다는 증거이다. 


고전 16:1-4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뿐 아니라 이미 갈라디아 교회에게도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을 권유했음을 알 수 있다(1b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매주 주일(■■■■■■■■■■■■■■■■■■■■)28) 모을 것을 권면한다(2a절). 그러나 모금행위는 어떤 조직을 통해서도 아니며29) 예배시간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즉, 각자 집에). 그리고 모금에 일정한 금액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2a절). 여기서는 롬 15:22-33과 달리 바울이 직접 모은 모금액을 예루살렘으로 전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3f절). 그리고 여기서는 아직 예루살렘교회가 이 모금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다(롬 15:39f). 이는 고린도 전서를 쓸 당시 아직까지 바울과 예루살렘교회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악화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고후 7:13-9:15


이 부분에서 바울은 모금을 위해 다음과 같은 논거들을 사용한다.


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근거한다. 그는 원래 부유한 분이셨으나 우리가 부유하게 되도록 가난해 지셨다(8:9).

2) 형평의 원칙(8:13f)

도움을 받는 자가 상태가 좋아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돕는 자도 이 때문에 곤궁에 처해지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바울은 또한 아래와 같이 말한다. 현재 고린도 교회의 풍족함은 예루살렘교회의 부족을 채우는 데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고린도 교회가 부족할 때 예루살렘 교회는 도울 것이다(8:14).

3) 자연법칙 많이 뿌린 자는 많이 거둔다(9:6).

4) 하나님은 기꺼이 주는 자를 사랑한다(9:7).

5) 하나님은 돕는 자를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신다(9:8-10).

6) 모금은 그 수혜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한다(9:11-13).


H.D. Betz는30) 고후 9:13의 “복종하는 것과”(■■■■■■■■■■■■■■■)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아가야인은 예루살렘 교회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전체 문맥에서 볼 때(9:11-13)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바울은 여기서 모금의 수혜자인 예루살렘 교인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게 된다고 한다.31) 이유 중의 하나는 아가야인이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예루살렘과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하여 연대정신에 입각하여 모금에 참여했기 때문이다(13절)32). 바울이 생각하는 신앙인이란 ‘서로의 짐을 지는’(갈 6:2) 그런 존재이며 ‘모두에게, 특별히 믿음의 식구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을 갖게 된 아가야인은 예루살렘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9:13에서 ■■■■■■■■는 “믿어 순종한다(■■■■■■■■■■■■■■■ 롬 1:5)”는 뜻으로서33) 아가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고백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이지34) 아가야인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종속의 의미가 아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고후 7:13-9:15에서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자신 보다 우위라고 생각하는 어떤 징후나 논거도 찾아 볼 수 없다. 예루살렘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자기와 동등한 믿음의 동지들이 있는 그런 교회이다.


c. 모금의 종결


바울은 롬 15:22ff에서 로마교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여행의 목적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끝냈기 때문에 이 모은 것을 예루살렘에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이 부분에서 (15:22-33 또한 19b절)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와는 다른 예루살렘에 대한 바울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여기서 예루살렘 교회를 신학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의 것들이 그 예이다.


1) 예루살렘은 복음의 출발지이다(15:19b).

2)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에게 신령한 것을 나누어 준 그런 존재이다(15:27ba).

3) 이방인들의 모금은 이 교회를 위한 일종의 의무로 묘사된다.35) ("빚진 자니…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15:27 bβ)


바울은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대해 긍정적으로 (우월적인 존재로) 평가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로마서의 이 부분에서는 태도가 바뀌었을까?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1) 임박한 모금의 종결을 앞두고 바울은 이용가능한 모든 모티브를 사용하여 모금을 독려했다.

2) 비록 로마서가 직접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방문을 앞두고 가능한 한 예루살렘에 대해 긍정적인 묘사를 한다.

3) 고린도 후서나 갈라디아서에서는 바울의 대적자가 명백히 존재한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근거를 둔 자들과 연관되어 있거나 (갈) 유대전승들, 다시 말해 율법(갈 3-4; 고후 3:7-18): 할례 (갈 2:3f; 5:7-11; 6:12f): 유대적인 혈통(고후 11:22) 등을 자신의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담판을 벌이거나(갈 1:15-2:14) 율법에 얽매인 유대주의의 총체인 ‘예루살렘’을 비판한다(갈 4:21ff). 반면에 로마서는 미지의 로마인들에게 보내진 것이다.36) 그러므로 여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예루살렘을 자신의 배후로 하는) 바울의 대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아래의 관련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과연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루살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한다.



롬 15:19b


롬 15:19b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복음의 출발지인 것 처럼 보인다 (예루살렘-로마-스페인).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데 직접 관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갈 1:22의 미완료 "[알지] 못하고 (■■■■)"은 지속적인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37) 그리고 “얼굴로”는 ‘관계의 3격’으로38) “개인적으로”라는 뜻이다(참고 살전 2:17). 따라서 예루살렘에 거주했던 유대(기독교)인들은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바울은 일차 방문 전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일루리곤이라는 단어는 로마 행정구역인 달마티아를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고 인종학적으로 일루리곤이라는 마케도니아의 한 지역을 (Jos: Bell 2:16:4; 2:369)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39)

19절 이하에서 로마의 행정구역이름이 주로 나오고 있고 “일루리곤”이라는 표현이 라틴어화된 형태라는 사실은 “일루리곤”이 여기서 로마의 행정구역을 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루리곤이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이곳 로마서 15장 19절에 단 한 번 나오고 있다. 이 곳이 바울의 선교지역이라는 언급은 바울 편지나 사도행전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루리곤은 바울의 선교지역이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예루살렘이나 일루리곤 지역에서 직접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오는 “내가”(■■) 라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이해를 해야 한다. 고린도 전서 15장 5-7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두 가지 현현(장소)에 대한 전승이 나온다(갈릴리와 [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 여 형제] 예루살렘 [야고보와 모든 사도]).

바울이 이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말하자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갈릴리도 복음의 출발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지적들은 19b절 이해를 위해 좀더 많은 설명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전체 문맥을 살펴보자. 16-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이해하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19a(개역은 18절)에서 표적과 기사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열거한다. 이 모든 것은 바울이 여러 지역에서 복음을 열심히 전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19b절).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선교원칙(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만 선교한다.)을 거론하고(20절) 이런 노력의 결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짐을 말한다(21절-사 52:15 LXX 인용).

바울은 구약적인 예루살렘의 전승에 나오는 종말에 복음이 전해지는 경로와 (특별히 사 66:18-21)40) 자신의 지금까지의 선교활동을 연관시켰다. 이를 통해 바울은 로마교회에 자신이 왜 여러 곳에서 선교활동을 했는지를 (앞으로 있을 스페인 여행까지도 포함하여) 설명한다. 또한 자신은 종말론적인 복음이 전파되는 처음부터 여기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서를 쓸 당시 점차 고조되어가는 예루살렘 교회와의 긴장을 고려해 볼 때 바울 자신도 복음이 전파되는 처음부터 관여했다는 이 말은 바울의 사도성이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위치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원증인 됨,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첫 일꾼으로써, 구약에 따르면 종말에 메시아가 도래할 곳인 예루살렘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소위 초대기독교의 모교회로서 여타 다른 교회들에 비해 신학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41)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도 이 원증인 됨에 마찬가지로 속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도 예루살렘 교회와 다름 아닌 동등한 사도성을 가지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19b절은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는 바울 자신의 지금까지의 선교활동을 “복음전파의 전체 경로”의42) 맥락에서 언급한다. 비록 그는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에서도 당시로마의 서쪽 세계에서 볼 때 끝인 일루리곤에서도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지만43) 구약적이고 유대적인 표상에 자신의 지금까지의 선교활동을 대입시켜44) 동등한 ‘원증인성’을 확보해 낸다.

그 이외에 복음의 출발지로서의 ‘예루살렘’이라는 사고는 바울에게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15:27은 예외. 이는 다음에서 다룬다). 바울에게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게서 부터’가 아니라  ‘세상 끝까지’이다.    


롬 15:27b


15:27b에서 다시 바울은 예루살렘의 신학적인 의미를 높이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구절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신령한 것을 나누어 준 존재이다.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바로 복음이다.45) 이 구절은 유일하게 바울이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의 근거를 구약적,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관점에서 이끌어 낸 곳이라고 할 수 있다.46)

그러나 이 구절과 지금까지 주장된 것처럼 바울의 복음이나 사도성이 예루살렘과 독립적이라는 바울의 생각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 만일 예루살렘에게서 나온 신령한 것에 이방인들이 빚을 진 존재라면 예루살렘 교회에 순종하는 태도가 옳은 것이 아닐까?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과 바울은 이방인에게 그리고 베드로로 대변되는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협정이 맺어졌다(갈 2:9).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 기독교인들과는 특별한 연관성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롬 15:27b에서는 다르게 말하고 있다. 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특별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주로 자신에 의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영적으로 빚을 졌다고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15:19b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 선교사로써 처음부터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땅 끝까지 전해지는 전 복음의 진행과정에 참여했고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와 동등한 질적인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들 둘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진 자들로서 처음부터 열심히 자신들의 임무를 잘 감당했다. 이를 전체 복음사업의 관점에서 보면 둘은 결국 같은: 둘로 나눌 수 없는 복음을 위해 수고한 한 존재이다.

15:27b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울러 갈 6:6(참고 고전 9:11)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은 바울이 주는 신앙의 가르침이다.47) 여기서 바울은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가르친 사람에게 물질적인 것으로 보답하라고 권유한다. 마찬가지로 고전 9:11에서도 바울은 선교사는 자신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가 “예루살렘”을 보편적으로 이해한 데 근거하여 동등한 존재로 이해될 수 있으며 선교사는 (“신령한 것을 뿌린 자” 고전 9:11) 복음을 받아들여진 자들에 의해 물질적인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마치 바울에 의해 기독교인이 된 고린도인들이 복음을 전한 바울에게(고전 9:11a) 물질적으로 도와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처럼(11b절)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교회에게 (신령한 것을 전해준 존재) 물질적인 것을 지원해야 한다(롬 15:27b).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이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볼 때 (롬 11:25-32) 예루살렘은 모든 사람을 위해 복음이 퍼져 가는 출발지라는 두 가지 점에서 예루살렘은 바울이나 이곳 교회 둘 다에게 구약에서 많은 약속을 하신 곳이며 그곳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한없는 자비를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교두보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신령한 것을 빚졌다는 표현을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모금을 자신의 동료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하지 않는다. 물론 모금의 구체적인 수혜 대상은 예루살렘 교회이다. 그리고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는 다름 아닌 하나의 존재라는 입장에서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은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예루살렘’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도와야 할 이유는 그곳에서 만민을 위한 종말론적인 구원이 나타나는 ‘예루살렘’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의 출발지인 예루살렘을 물질적으로 도와야 할 의무’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고조되어가는 긴장


예루살렘 교회 내에서 점증하는 바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로마서 집필 전까지는 결코 바울은 모금을 예루살렘 교회가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서를 쓸 무렵에는 예루살렘 내의 바울 비판이 더욱 심해져 바울은 결국 그들이 모금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롬 15:31b).48)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모금을 받지 않는 이유를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살전 2:14 ff; 비교 갈 5:11; 6:12) 유대 당국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즉,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과 비록 사이가 좋았지만 당국에 의한 박해가 두려워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복음을 주장하는 바울이 전달하는 모금을 받기를 꺼려했다는 것이다.49) 그러나 유대당국에 의한 박해는 이방 기독교인들이 그 대상이지 유대 기독교들이 아니었다.50) 그러므로 모금이 안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의 이유는 예루살렘 교회 자체에 있다고 봐야 한다. 즉,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교회 내에 바울을 비판적으로 보는 여론이 점점 드세졌기 때문에 바울은 그러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51)

모금이 거부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계속 한다. 그리고 직접 이를 전달하려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모금은 둘 간의 공동체 의식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모금을 전달하려는 이 여행의 목적은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 간에 존재하는 긴장을 해소하고 둘 간의 공동체 의식을 다시 공고히 하는 데 있다. 바울은 이 여행을 통해 이전의 방문을 통해 이룩된 상호 인정과52) 공동체 정신을53) 예루살렘 교회에 다시 상기시키려는 데 있다(갈 2:9).


생명의 위협을 무릅 쓴 예루살렘 여행


바울의 모금전달을 위한 예루살렘여행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것이라는 점에서(롬 15:31a) 좀더 이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려는 희망을 피력하기 직전에 이 여행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울은 이전에 약속했던 모금 문제를 종결지음으로써 당시 세계의 동쪽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을 마치고 다른 쪽으로 선교의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첫째, 바울은 (동쪽 지역 선교활동을 마치기) 수년 전부터 서쪽 지역에 있는 로마에 방문하고 싶어했다는 점과(롬 1:13; 15:22) 둘째, 바울은 단지 모금을 위해 동쪽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54) 바울의 중심과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도로 부름받은 후 약 15년 간 예루살렘 교회와 긴밀한 접촉 없이 독자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던 것이다.

만일 이 모금이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거부된다 하더라고 그는 계속 복음을 전하는 활동에 계속 전념했을 것이다. 비록 그가 많은 정열을 쏟기는 했지만 모금의 문제는 이런 바울의 주요 관심사에 비교해 볼 때 이차적인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어떤 신학적인 우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금은 이 교회에 대한 의무감의 발로도 아니었다. 따라서 모금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바울이 선교활동 중에 일어난 한 가지 사건일 뿐이다. 그러므로 조금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선교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 간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은 모금을 가지고 그것도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바울이 혼신을 다한 것은 복음전파이다(고전 4:9; 고후 1:8f; 4:11; 11:23; 빌 1:21ff). 그에 비해 예루살렘 여행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예루살렘 방문 후에 당시 세계의 서쪽 끝인 스페인으로 가려 했다.55)

모금약속이 이루어 진 후 모금을 전달하기 위한 예루살렘 방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모금은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도움의 성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스페인 선교여행을 마친 후 그곳에서 모은 모금까지 합쳐 예루살렘으로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스페인 여행 전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모금을 전달하려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다음과 같은 추측을 가능케 한다.

바울은 단순히 소원해진 자신과 예루살렘 교회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만 모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임박한 스페인 여행과 관련하여 모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다시 말해 2차 예루살렘 방문 때처럼 바울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번 방문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필요성이란 바로 목전에 직면한 서쪽으로의 선교여행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추측 가능하다.

바울의 선교 원칙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롬 15:20; 고후 10:15f). 이 원칙과 바울이 다른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고린도 전서 3장(6.10절 참고)을 연관시켜 볼 필요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천명한 선교원칙이란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에 또 다른 교회를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바울 자신의 원칙과 고린도 전서 3장에서 보듯이 선교지에서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본다.56

하지만 로마서 15장 20절; 고린도 후서 10장 15절 하반절과 다른 한편으로 고리도 전서 3장, 이 두 곳에서의 차이는 오히려 바울이 직면한 선교 영역에서의 경쟁자들 성격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이 만난 다른 선교사들은 바울의 동료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고전 3:5.9). 거기에 반해 고린도 후서에 나오는 이들은 바울에 대치되는 자들이다. 그들은 독선주의적인 유대주의를 옹호했다(고후 11:22). 따라서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다른 (성)령을 전했고(11:4) 그들은 거짓 사도이다(11:13). 그들은 다른 지역에서 바울이 기초를 놓은 고린도에 들어왔고57) 바울은 그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대적자, 경쟁자가 없는 다른 곳에서 선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58) 고린도 후서 10장 15절 하반절은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저술 시기가 고린도 후서와 별로 멀지 않는 로마서에서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바울의 희망이 언급된다(15:20). 더 나아가 로마서에서는 바울이 몇 년 전부터(다시 말하면 고린도에 있을 때부터도)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방문하겠다는 바울의 소망이 나온다(1:13; 15:23b). 다시 말하면 로마서에서 나오고 있는 로마를 방문하겠다는 희망이나 서쪽으로 가겠다는 바램은 고후 10:15f와 같은 맥락에서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59) 즉, 바울은 당시 세계의 다른 곳, 서쪽으로 가려고 한 주요 원인은 고린도 후서에 나오는 대적자들로 인해 겪은 어려움 때문이었다.60) 바울은 서쪽으로 떠나는 여행을 앞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여행을 결심하게 된 원인 중의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의 선교지에서 만난 대적자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지의 선교지에서도 이와 유사한 대적자들을 만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어떤 대책이 필요했고 그래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다(미지의 선교지에서 만날 대적자 문제가 목숨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모금 전달 차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한편으로  모금을 전달함으로써 자신과 예루살렘 교회 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그 사이에 희미해진 상호 인정의 정신을 다시 환기시키려 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긴장을 해소하고 상호인정의 정신을 재확인함으로써 자신은 예루살렘 교회와 동등한 사도성을 가진 동류의 파트너라는 사실을 내외적으로 재 천명시키려고 했다. 특별히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는 동등한 파트너라고 재천명된 이 사실은 새로운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할 때 특별히 유대적인 성향을 지닌 이들과 대립할 때 바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대한 구약의 종말론적인 전승들에 근거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존재는 무엇보다도 유대적인 성향을 띈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의 출발지로서의(15:19), 전 세계를 위한 종말론적인 구원의 고향(11:26b■; 15:27b■)으로서의 예루살렘, 또한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사건(갈 2:11-14)에서 보듯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안디옥 교회의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61) 따라서 미지의 서쪽 세계에서 마주치게 될 바울의 대적자가 유대적인 성향을 띄었건 아니건 간에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와 (혹은 교회 내 친유대적인 그룹과) 연관이 있건 없건 간에 모금을 전달하는 예루살렘 여행을 통해 재차 확인된 사실, 즉 바울과 이 교회는 상호인정에 바탕을 둔 동등한 파트너라는 사실은 바울이 그들과 대립하거나 논쟁할 때 바울을 돕는 훌륭한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도 예루살렘으로 모금전달 여행을 떠났다.


4. 결론


본 논문에서는 바울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활동에 대해 살펴보면서 특별히 둘 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우선 모금에 관한 용어들을 조사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모금은 근본적으로 ‘의무’가 아니라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간의 동등함에 근거하는 공동의식, 동역자됨’ 의 표시임이 밝혀졌다.

다음으로 모금을 통해본 예루살렘교회와 바울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 사도회의에서 모금약속이 생긴 이후 구체적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관심을 가지며이 교회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입장을 구체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한다.

2) 그러나 둘 간의 신학적인 차이는 너무나 컸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각자의 신학적인 견해를 계속 고수하는 형태로 관계가 이루어졌다.

3) 예루살렘 교회라고 할 때 그 안에는 각기 신학적인 견해가 다른 적어도 둘 이상의 그룹이 존재하였다. 비록 교회의 세 기둥들이 바울의 복음도 옳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것은 모든 교회의 구성원이 바울의 복음이해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내린 바울의 복음에 대한 인정이나 동의가 시간이 지나더라고 계속 유효했다고 볼 수도 없다. 로마서를 쓸 무렵에는 교회 내에 바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매우 커져 바울은 결국 모금이 거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바울의 모금 텍스트 속에서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신학적인 위치를 높히 평가한 것 처럼 보이는 구절이 있다(롬 15:19b; 15:27b). 그러나 이를 근거로 바울이 이 교회의 신학적, 교회사적인 특권을 인정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5) 바울은 서쪽으로 선교하러 가기 전 모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이 여행의 목적은 첫째 사도회의 때 모금 약속을 통해 성립되었으나 그 사이 희미해진 원칙 즉, 바울과 이 교회 사이에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파트너 관계가 성립한다는 상호인정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가로 이를 통해 바울은 미지의 선교지에서 만나게 될 대적자들에 대해 사용할 좋은 논증거리를 확보하고자 함이었다.62)

그와 예루살렘 교회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파트너 관계라는 바울의 주장 앞에 대적자들은 바울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이유로 그의 사도성에 회의를 품거나 그를 비난하기 힘들어 지게 된다.


1) 이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는 K. Holl (Die Kirchenbegriff des Paulus in seinem Verhältnis zu dem der Urgemeinde, in; K.H. Rengstorf (Hg.), Das Paulusbild in der neueren deutschen Forschung, WdF 24, 1964 168)이다. 또한 M. Hengel, Jakobus der Herrenbruder – der erste Papst?, in; D. Gräßer u.a. (Hg.), Glaube und Eschatologie, 1985, 102 등도 이에 동의한다.

2) H.-J. Schoeps, Paulus. Die Theologie des Apostels im Lichte der jüdischen Religionsgeschichte, Tübingen 1959, 63; K.F. Nickle, The Collektion. A Study in the Strategy of Paul, Basler Diss. 1963, 74-99; E. Schweizer, Art. ■■■■■■■■■■., ThWNT 6, 412,11ff; D. Georgi, Die Geschichte der Kollekte des Paulus für Jerusalem, ThF 38, 1965, 29f.

3) G. Lüdemann, Paulus, der Heidenapostel, Bd. I, Studien zur Chronologie, FRLANT 123, 1980 108.

4) E. Bammel, Art. ■■■■■■, ThWNT 6, 908, 25f; D. Georgi, Geschichte, 29; J. Becker, Paulus. Der Apostel der Völker, Tübingen 21992, 273; 부분적으로 K.F. Nickle, Collektion, 125ff.

5) Zahn, KNT 9, 106; K. Berger, Almosen für Israel. Zum historischen Kontext der paulinischen Kollekte, NTS 23, 1977 187 A.45. 199 A.78.

6) Mußner, HThK 9, 124; D. Georgi, Geschichte, 28f; J. Hainz, Gemeinschaft zwischen Paulus und Jerusalem (Gal 2,9f), in; P.-G. Müller (Hg.), Kontinuität und Einheit, 1981 41; K. Berger, Almosen, 196ff; J. Becker, Paulus, 274; Lührmann, ZBK.NT 7, 40: J. Gnilka, Die Kollekte der paulinischen Gemeinden für Jerusalem als Ausdruck ekklesialer Gemeinschaft, in; R. Kampling u.a. (Hg.), Ekklesiologie des Neuen Testaments, 1996 314. 7) O. Cullmann, Petrus. Jünger ■ Apostel ■ Mätyrer, Zürich 31985, 48; G. Fohrer/ E. Lohse, Art. ■■■■■■■■., ThWNT 7, 333f; L.E. Keck, The Poor Among the Saints in the New Testament, ZNW 56, 126.

8) R. Riesner, Die Frühzeit des Apostels Paulus. Studien zur Chronologie, Missionsstrategie und Theologie, WUNT 71, 1994, 221; 부분적으로 D. Georgi, Geschichte, 28f; 역시 부분적으로 Lührmann, ZBK.NT 7, 40.

9) K.F. Nickle, Collection, 138ff.

10) Vouga, HNT 10, 50; F. Vouga, Geschichte desfrühen Christuntums, UTB 1733, 1994 155; Vgl. D. Georgi, Geschichte, 21.

11) F. Vouga, Geschichte, 106.

12) W. Beyer, Art. ■■■■■■■■■■■■■., ThWNT 2, 81,24ff; A. Weiser, Art, ■■■■■■■■■■■■■., EWNT 1, 726.

13) W. Bauer, Wb, s.v.; W. Zimmerli/ H. Conzelmann, Art. ■■■■■■■■■., ThWNT 9, 383ff.

14) Wolff, ThHK 7/2, 220; Conzelmann, KEK 5, 355; W. Zimmerli/ H. Conzelmann, Art. ■■■■■■■■■., ThWNT 9, 384,4.

15) W. Bauer, Griechisch-deutsches Wörterbuch zu den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und der frühchristlichen Literatur, Berlin u.a. 61988, s.v. 1; F. Hauck, Art. ■■■■■■■■■■., ThWNT 3, 809,8ff.22ff; J. Hainz, Art. ■■■■■■■■■■■., EWNT 2, 754f; K.F. Nickle, Collection, 124f; J. Gnilka, Kollekte, 310.

16) G. Kittel, Art. ■■■■■■■, ThWNT 4, 285,8ff; A. Debrunner/H. Kleinknecht/ O. Procksch/ G. Kittel/ G. Quell/ G. Schrenk, Art. ■■■■■■■■■., ThWNT 4, 73,10ff.

17) H.W. Beyer, Art. ■■■■■■■■■■■■■., ThWNT 2, 752,4ff.12ff, 761,30ff, 757,1ff.

18) W. Bauer, Wb, s.v.

19) H. Strathmann/ R. Meyer, Art. ■■■■■■■■■■■■■■■., ThWNT 4, 233,40ff; Schneider, HThK 5/2, 114 A.31.

20) W. Bauer, Wb, s.v.; LSJ, s.v. ■■■■■와 ■■■■■■■.

21) J. Gnilka, Kollekte, 302. 312.

22) 갈 2:10에  우리 에서  나도 로 복수에서 (■■■■■■■■■■■■■) 단수로 (■■■■■■■■■■■) 바뀐 것을 보아 처음 모금약속을 했던 바울과 바나바가 사도회의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참고 행 15,39) 바울만 모금 활동에 매달렸음을 추측할 수 있다. 참고 Vouga, HNT 10, 50.

23) G. Mayer, Index Philoneus, Berlin u.a. 1974, s.v.

24) K.H. Rengstorf (ed.), A Complete Condordance to Flavius Josephus, 4 Vols., Leiden 1973-83, s.v.

25) A. Mauersberger (bearb.), Polybios-Lexikon, Bd. I, Berlin 1956f s.v.

26) ■■■■■■■■■■■■■ (Konj. Präs.)는 상시적이고 계속적인 어떤 행동을 의미한다. Burton, ICC, 99; Betz, Der Galaterbrief. Ein Kommentar zum Brief des Apostels Paulus an die Gemeinden in Galatien, München 1988 (Original; Galatians, Philadelphia: Fortress, 1979), 193; Vouga, HNT 10, 50.

27) U. Wilckens, Über Abfassungszweck und Aufbau des Römerbreifs, in; ders., Rechtfertigung als Freiheit. Paulusstudien, Neukirchen 1974 129; J. Jervell, Der Brief nach Jerusalm. Über Veranlassung und Adresse des Römerbriefes, StTh 25, 1971 67.

28) W. Bauer, Wb, s.v.2.

29) Conzelmann, KEK 5, 354; Lang, NTD 7, 246.

30) H.D. Betz, 2. Korintherbrief 8 und 9. Ein Kommentar zu zwei Verwaltungsbriefen des Apostels Paulus, Gütersloh 1993 (Original; 2 Corinthians 8 and 9, Mineapolis: Fortress, 1985), 219ff.

31) Windisch, KEK 6, 283.

32) 유사하게 Bultmann, KEK Sonderbd., 260; Lang, NTD 7, 325.

33) Lietzmann, HNT 9, 139; Barreett, BNTC, 240; 유사하게 Lang, NTD 7, 325.

34) R. Bergmeier, Art. ■■■■■■■■, EWNT 3, 975; 또한 부분적으로 G. Delling, Art. ■■■■■■■■, ThWNT 8, 47,43ff.

35) 유사하게 Zahn, KNT 6,603; Weiss, KEK 4, 590; Wilckens, EKK 6/3, 127.

36) W.G. Kümmel,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 Heidelberg 211983, 272.

37) 참고 F. Blass/ A. Debrunner/ F. Rehkopf, Grammatik des neutestamentlichen Griechisch, Göttingen 171990 §353,2.a; Schlier, KEK 7, 62; Mußner, HThK 9, 98; Burton, ICC, 62f; Vouga, HNT 10, 38.

38) Bl-D §197.

39) Sanday/ Headlam, ICC, 408; Cranfield, ICC, Vol.2, 761; Michel, KEK 4, 460; R. Riesner, Frühzeit, 214.

40) 참고 R. Riesner, Frühzeit, 216ff.

41) 참고 D. Georgi, Geschichte, 25ff; F. Hahn, Das Verständnis der Mission im Neuen Testament, Neukirchen-Vluyn 1963 67ff. 89ff.

42) Wilckens, EKK 6/3, 120.

43) J. Knox, Conception, 10.

44) Lietzmann, HNT 8, 121; Schmidt, ThHK 6, 245.

45)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Sanday/ Headlam, ICC, 412; Cranfield, ICC, Vol.2, 773; Zahn, KNT 6, 603; Weiss, KEK 4, 590; Kühl, Der Brief des Paulus an die Römer, Leipzig 1913 472; Althaus, NTD 6, 133; Schmidt, ThHK 6, 248; Schlatter, Gottes Gerechigkeit. Ein Kommentar zum Römerbreif, Stuttgart 61991, 390; Michel, KEK 4, 465; Schmithals, Der Römerbrief, Gütersloh 1988 537; Käsemann, HNT 8a, 385, Stuhlmacher, NTD 6, 213f; Wilckens, EKK 6/3, 127.

46) D. Zeller(Juden und Heiden in der Mission des Paulus. Studien zum Römerbreif, FzB 1, 1973, 235)도 그렇게 생각한다.

47) Zahn, KNT 9, 274; Bring, Der Brief des paulus an die Galater, Berlin u.a. 1968 237; Becker, NTD 8, 76; Vouga, HNT 10, 148.

48) Michel, KEK 4, 468; 참고 F. Vouga, Geschichte, 43.

49) Schmithals, Römerbrief, 538ff; W. Schmithals, Paulus und Jakobus, FRLAN 85, 1963, 67ff; K. Haacker, Exegetische Probleme des Römerbriefes, NT 20, 1978 5f.

50) Holtz, EKK 13, 102; M. Hengel, Der vorchristliche Paulus, in; ders./ U. Heckel (Hg.), Paulus und das antike Judentum, WUNT 58, 1991 267; B.A. Pearson, 1 Thessalonians 2:13-16: A Deutero Pauline Interpretation, HThR 64, 1971 86f; I. Broer, Antisemitismus und Judenpolemik im Neuen Testament. Ein Beigrag zum besseren Verständnis von 1. Thess 2,14-16, in; B.B. Gemper (Hg.), Religion und Verantwortung als Elemente gesellschaftlicher Ordung, Siegen 21983, 744.

51) Lietzmann, HNT 8, 123; Dodd, MNTC, 233; Wilckens, EKK 6/3, 129; Wilckens, EKK 6/1, 44f; Schmidt, ThHK 6, 249: Käsemann, HNT 8a, 391; Stuhlmacher, NTD 6, 215; Schlatter, Gerechtigkeit, 392f; J. Gnilka, Kollekte, 314.

52) J. Gnilka, Kollekte, 302.

53) Zahn, KNT 6, 604; Weiss, KEK 4, 589; Wilckens, EKK 6/1, 45.

54) W.G. Kümmel, Einleitung, 272.

55) K. Haacker, Probleme, 2; G. Klein, Der Abfassungszweck des Römerbriefes, in; ders., Rekonstruktion und Interrpretation. Gesammelte Aufsätze zum Neuen Testament, BEvTh 50, 1969 132f.

56) Käsemann, HNT 8a, 381; Theobald, SKK.NT 6/2, 209; Wilckens, EKK 6/3, 120f; 이와 유사하게 Weiss, KEK 4, 585; Zahn, KNT 6, 601; Kühl, Römer, 471; Althaus, NTD 6, 132; Schlier, HThK 6, 433; G. Klein, Abfassungszweck, 132 A.13.

57) Windisch, KEK 6, 311ff; Wendland, NTD 7, 207; Bultmann, KEK Sonderbd., 197; Lang, NTD 7, 333.

58) Windisch, KEK 6, 312; Bultmann, KEK Sonderbd., 198.

59) Windisch, KEK 6, 311f; Lietzmann, HNT 9, 144; Wendland, NTD 7, 207; Schlatter, Paulus, 625f; Lang, NTD 7, 333f; Klauck, NEB.NT 8, 81f; Barrett, BNTC 267f; Furnisch, AncB 32A, 481f.

60) Lietzmann, HNT 8, 121; Schmidt, ThHK 6, 245f; 참고 Wolff, ThHK 8, 207; K. Haacker, Probleme, 3.

61)) 안디옥 사건 이후 바울이 유럽 쪽으로 전도여행을 하게 된 것을 볼 때, 바울은 안디옥에서 소수 세력으로 몰리게 되어 결국 이곳을 떠나야만 했던 것 같다. 즉, 예루살렘의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의 유대적인 신앙노선에 바나바와 유대기독교인들 뿐 만 아니라 (갈 2,13) 많은 이방기독교인들 까지도 동조를 했다.

62) 그렇다고 이를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자신의 사도성을 재차 인정받기 위해서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둘 간의 동역자됨, 동등성이 성립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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