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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에 나타난 할례 문제 (The Circumcision-Problem in the Letter to the Galatians)


I. 들어가는 말

II. 할례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할례의 기원과 구약시대의 할례

2. 신약시대의 할례

III. 갈라디아 교회와 할례

1. 대적자들의 등장

2. 대적자들의 '할례'이해

IV. 바울의 대응

1. '할례'와 관련한 바울의 논지

1) 갈라디아서 2:3 (peritmhqh'nai)

2) 갈라디아서 2:7-12 (peritomhv 7절, 8절, 9절, 12절)

3) 갈라디아서 5:2-12 (peritevmnhsqe 2절,

peritevmnomenw 3절, peritomhv 6절, 11절)

4) 갈라디아서 6:12-15 (peritevmnesqai 12절, 13절;

peritemnovmenoi 13절, peritomhv 15절)

2. 바울의 '할례'이해

V. 나오는 말


I. 들어가는 말

신약에서 모두 53회 등장하는 단어군 "할례 (peritomhv 36회, peritevmnw 17회)"는 누가복음에 2회, 요한복음에 3회, 사도행전에 8회, 로마서에서 15회, 고린도전서 3회, 빌립보 2회, 골로새서 5회, 에베소서, 디도서에 각 1회 등장한다. 이에 반해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주다, 받다)"라는 단어가 무려 13회나 나오고 있다. 단어군 "할례"의 사용 빈도 순위로 볼 때 갈라디아서는, 15회 사용되는 로마서에 이어 두 번째이다.

하지만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 길이가 대략 로마서의 1/3에 불과하며, 로마서에서는 이 단어군이 주로 2:25 이하와 (7회), 4:9 이하에 (6회) 집중해서 나오고 있는데 반해, 갈라디아서에서는 2:3에서 1회, 2:7-12에서 4회, 5:2-11에서 4회, 6:12-15에서 4회 등 대체로 서신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거해 볼 때, 유대교의 종교 의식 중의 하나였던 '할례'가 갈라디아 교회 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본 소 논문은 이처럼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할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우선 할례란 무엇이며, 신약 시대에 이 의식이 어떻게 받아들여 지고 있는 지에 대해 다룬다. 다음으로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 할례가 어떤 이유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를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는 자들의 신학적인 입장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지에 대해 해당 구절을 통해 알아 본다: 우선 바울의 할례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무엇인지, 특별히 갈라디아에서 할례를 놓고 첨예화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바울은 어떤 까닭으로 할례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지, 율법과 할례와의 관련성 문제, 그리고 서술 과정 에서 바울의 전체적인 논조와 논지들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 본다.

II. 할례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할례의 기원과 구약시대의 할례

할례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빌론이나 앗시리아, 고(古) 페니키아-우가릿 그리고 블레셋 (삿 14:3; 15:18) 지역에서 이 의식은 생소한 것이었다. 다만 헤로도투스 시대에 에디오피아인, 이집트인, 페니키아인들은 할례를 거행한 것 같으며, 예레미야 9:24ff를 참고할 때 암몬, 모압, 에돔인들도 할례에 대해 알았다고 추정된다. 구약성경의 언급대로 (출 4:25; 수 5:2) 부싯돌이나 돌 칼로 할례를 거행했다는 사실을 통해 볼 때, 이 의식은 일찍부터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거행되어져 왔음이 분명하다.

구약에 (창 17:11-14) 따르면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이는 이스라엘인 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종들이나 외국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명령이었다. 여기서 할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과 연관 되어있다 (14절).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그 누구라도 이스라엘의 제의나, 이와 관련된 축제에 참가할 수 없었다 (출 12:48f; 겔 44:9). 본토가 아닌 먼 이방 땅에서 살아야 했던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는, 여호와 신앙을 계속 지켜나가고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인임과 여호와에 대한 신앙심 여부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백한 외적인 증거 역할을 했던 할례는 특별히 이 시기에 언약 사상과 연결되어 (참고 행 7:8 "할례의 언약") 매우 강조되었다.

"새 언약"에 대해 말함으로서 (렘 31:31ff) 가장 신약적인 예언자로 여겨지는 예레미야는 더 나아가 "하나님이 원하는 할례(렘 4:4 표준 새번역)"란 다름아닌 "마음에 [행하는] 할례(렘 9:26)"라고 (참고 신 10:16; 30:6) 선언하였다. 에스겔 44:9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도 예레미야와 같은 맥락으로서, 신약시대에 본격화되는 할례에 대한 심령화된 이해의 전조라고 할 수 있겠다.

셀류커스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IV세의 폭정 때에 (주전 176-163년) 할례는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고수하는가, 아니면 압력에 굴복하여 배교하는가에 대한 시금석 역할을 하였다. 에피파네스 IV세는 유대인들이 할례를 행하지 못하게 엄금하였다 (막하비 상 1:48ff).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할례를 받게 했다 (막하비 상 1:60f). 그렇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은 (ejpispasmov") 배교나 부인 그리고 언약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히르카누스 I세는 점령한 이두매 지역에서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했으며 (주전 128년), 그의 아들 아리스토불 I세도 (주전 104-103) 갈릴리를 정복하면서 그곳 주민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면서 그들을 유다화시켰다. 따라서 할례는 다른 한편으로 배타적인 유대주의 정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후 132-135년 유대인의 마지막 저항이 된 바코바의 난의 발생 원인도 로마 당국이 할례를 금지한 데에 있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도 할례를 옹호했다. 그에 따르면 할례는 위생적인 이유로도 유익한 것이며, '육체의 정결'이라는 의미로서 제사장 역할을 하는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또한 할례란 육적인 쾌락을 억제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행위로서 이를 통해 비단 육적인 차원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무절제하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Spec. Leg. I, 1-11). 그는 또한 Spec. Leg. I, 304-306에서 영적인 할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2. 신약시대의 할례

신약 시대에도 할례(peritomhv)는 계속 거행되었다. 성경은 세례 요한과 예수가 각각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눅 1:59; 2:21). 단어군 "할례"의 용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복음서에서는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지도 않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7:22f에서 할례는 다만 안식일 법을 의문시 할 목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렇지만 초대 교인들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할례가 갖는 의의에 관해서 과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인이건 간에 전통에 신실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할례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유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된 이방 사람들에게 (안디옥) 할례 받으라고 가르쳤다 (행 15:1; 참고 15:5). 이러한 맥락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따라서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복음을 전한 바울은 마지막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동족들로부터 모세의 율법과 할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비난을 받아야 했다 (행 21:21).

이방인들이 할례에 대해 갖는 입장은 유대인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는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이방세계는 할례를 야만적인 것, 고상하지 못한 것,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연무장(Gymnasium gumnavsion)에서 나체로 운동을 하거나 공중 목욕탕을 출입할 기회가 많았던 당시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그 사회 안에서 경원시 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이 의식을 수용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였다. 그런 점에서 할례는 이방인들을 전도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더욱 강조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구약의 제의들은 신약 시대에 와서 심령화 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하지 않고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이다. 이같은 경향은 '할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이미 예레미야의 경우에서도 나타나 있다 ("마음에 행하는 할례"). 심령화된 할례에 대한 사고는 특별히 바울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그는 빌립보서 3:2f에서 유대적인 성향을 띈 대적자들에 대해 손할례당(katatomhv)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신에 속한 믿는 자들을 할례당(peritomhv)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로서 할례는 육체에 나타난 구체적인 표식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바울은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라고 말한다 (롬 2:28f). 더 나아가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 3:30) 라고 말함으로서 할례의 의미를 상대화하고 있다. 제 2 바울 서신에는 "손으로 육신에다가 행하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일컫는 사람들" (엡 2:12),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 (골 2:11)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서도 앞에서 언급한 '심령화' 경향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III. 갈라디아 교회와 할례

1. 대적자들의 등장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갈 1:2) 바울의 전도 활동 결과에 의해 설립되었다 (4:13). 이들 교회들은 주로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9). 바울은 1:6 이하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기노라"고 개탄하고 있으며, 3:3에서 갈라디아인들을 어리석다고 책망하면서 (참고 3:1)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질책을 하고 있다. 그리고 4:12ff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처음 (to; provteron) 복음을 전하게 된 동기와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13절) 당시 갈라디아인들이 얼마나 그와 그의 복음을 잘 영접하고 받아들였는지를 회상한 후, 교인들을 이간시키고자 열심을 내는 대적자들에 대해 (aujtouv") 언급하면서 (17절) "이제 다시 갈라디아인들과 함께 있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다"고 (20절) 하는 것을 볼 때, 대적자들은 바울이 복음 전파를 위해 갈라디아를 떠나 타 지역으로 간 후에, 즉 나중에 이곳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의 여러 곳에서 현재형 동사가 사용되는 점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본 서신 저술 당시 대적자들은 갈라디아 지역에서 계속 활동했던 같다.

대적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다 (tinev" "어떤 사람들이" 1:7; tiv" "누가" 3:1; 5:7; ^Osoi - ou|toi 6:12).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들은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oiJ peritemnovmenoi aujtoiv 6:13). 그들도 복음을 전했다는 점에서 ("다른 복음" 1:6) 기독교의 한 분파에 속한 전도자들로 추정된다. 5:12과 같은 조롱 섞인 비난이나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6:13의 peritemnovmenoi가 ("할례를 받은") 현재라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이 대적자들이 이방 기독교인 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W.G. Kümmel의 지적처럼 4:1 이하에서 율법 하에 있는 상태를 세상 초등 학문 아래에서 (3절),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8절) 종노릇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10절의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은 유대 율법에 따라 산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의 바울 대적자들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이라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설득하여 자신들의 편으로 삼기 시작했다 (1:6f; 4:18). 그들은 유대 전통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율법의 계속적인 유효성을 강조하였다 (2:16ff; 3:2f, 10-13, 23-26; 4:9-11, 21; 5:1,4). 바울은 갈라디아에 나타난 대적자들의 입장을 논박하기 위해, 과거 안디옥에 있을 때 할례를 받지 않게 한 이방인 디도를 데리고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로 올라가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의 복음을 교회 지도자들 앞에 내 놓고 토론한 결과, 그들을 설득시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2:1-10). 따라서 갈라디아 지역에 나타난 바울의 대적자들이 어느 정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부) 친유대적인 강경론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의 활동으로 갈라디아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떠나 율법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1:6f; 3:1ff). 외부에서 들어온 대적자들에게 할례는 율법을 지키며, 유대교의 한 일원이라는 구체적인 표시로서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그들은 갈라디아인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5:3f; 6:12).

2. 대적자들의 '할례'이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갈라디아서에는 무엇보다도 할례에 관한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할례'문제는 바울과 대적자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된 중요 사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적자들은 기본적으로 (믿음 뿐만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고 5:4). 즉,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였다 (3:2b). 따라서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어온 갈라디아 교회를 요동(요란)케 하며 (5:10; 1:7 두 곳 모두 taravssw가 사용되고 있다) 어지럽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5:12). 이들의 설득에 넘어가 일부 갈라디아인들은 유대식 절기를 지키기까지 하였다 (4:10). 2 세기 중엽의 이단 마르시온이 일찌기 자신의 갈라디아서 서문에서 "갈라디아인들은 거짓 사도들에 의해 율법과 할례로 돌아오도록 유혹을 받았다 (Galatae ... temptati sunt a falsis apostolis, ut in legem et circumcisionem verterentur)"고 밝히고 있듯이, 대적자들은 할례도 적극 권장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이 할례를 이처럼 적극적으로 권유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우선,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신실함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외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중시한 대적자들은, 우선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참고 행 15:1). (2) 다음으로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할 때, 요구되는 것이 세례(Tauchbad)와 할례 그리고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 세 가지였다. 그러므로 갈리아족인 갈라디아인들이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유대교로 개종하며 유대식으로 살겠다는 (!Ioudai>kw'" zh'n, ijoudai?zein 2:14) 의미를 지닌다. 에스더 8:17의 !ydih}y"t]mi ("유대인이 되다" 원형 dhy)을 LXX에서는 perietevmontoioudavizon 두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하였다. 이러한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할례는 유대인이 된(유대식으로 산)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로마서 3:1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에서도 유대인과 할례는 거의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방인인 갈라디아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는 문제는 그들을 유대화하여 율법에 따라 살게 함으로서 구원의 전제 조건을 확보하려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사안이 된다. (3) 끝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전통을 수호하는 신실한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위험에 항상 직면해 있었다 (5:11a).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온 대적자들도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1:6f) 이 박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박해를 받지 않게 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할례 받을 것을 주장하기 까지 했다 (6:12c).

이처럼 바울의 대적자들은 할례를 율법에 따라 (유대적으로) 사는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았으며, 구원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권유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란 결국 율법으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로부터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5:3f). 그랬기에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이 할례를 계속 권유했더라면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치는 것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5:11), 할례를 받으려 하는 교인들에게 만일 할례를 받으면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5:3). 또한 할례를 강요하는 대적자들에 대해 그들은 육체의 겉모습만을 중시하는 자들로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일 뿐 아니라, 사람들을 할례 받게 함으로서 이를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6:12f).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IV. 바울의 대응

1. '할례'와 관련한 바울의 논지

1) 갈라디아서 2:3 (peritmhqh'nai)

갈라디아서에서 '할례'와 관련된 주요 구절들을 찾느다면 2:3, 7, 8, 9, 12; 5:2, 3, 6, 11; 6:12, 13, 15 등을 들 수 있다. 이제는 각 본문들을 살펴보면서 바울의 할례의 관련한 논지를 살펴보자.

갈라디아서 2:1ff에 따르면 바울은 1차 예루살렘을 방문한 지 14년 후에 다시 (#Epeita dia; dekatessavrwn ejtw'n pavlin)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사도 회의'로 불리워지는 이 방문은 계시(kata; ajpokavluyin)가 계기가 되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이로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바울 자신의 독립성이 유지되고 있다. 방문 이유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선포한 복음을 그곳 교회 지도자들 (toi'" dokou'sin) 앞에 제시함으로서 (ajneqevmhn) 지금까지 수고했고, 또 앞으로 힘쓸 노고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3절에 따르면 이때에 헬라인인 디도가 동행하였다. 모든 수고가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앞에 바울 자신이 전한 복음을 제시했다는 2절의 내용에 이어 바로 3절에서 이방인인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할례 문제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도행전 15:1, 5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갈라디아서 2:3의 내용에 이어 4절에서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자유를 엿보고" 갈라디아인들을 "종으로 삼고자"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즉, 바울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얻은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요, 다시 종의 상태로 퇴락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까닭에 그는 할례 받을 것을 권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2) 갈라디아서 2:7-12 (peritomhv 7절, 8절, 9절, 12절)

예루살렘 사도 회의 과정 중에서 그곳 교회 지도자들은 (oiJ stu'loi 9절) 자신들에게 (좀더 정확히 말하면 베드로에게) 유대인들을 (문자적으로는 "할례" peritomhv 7절, 8절, 9절) 복음화 시킬 사명이 주어졌듯이, 바울에게는 이방인들을 (ta; e[qnh 8절, 9절; ajkrobustiva 7절)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의 사명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단어 "할례"는 "할례를 받은 자"라는 의미로서, '유대인'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사한 예: 롬 3:30; 4:9, 12; 15:8; 골 3:11). 이때 종종 대구(對句)를 이루는 단어로서 "이방인"(ajkrobustiva, e[qnh)이 함께 등장한다 (예 롬 3:30; 4:9, 12; 15:8; 골 3:11). 갈 2:12에서는 주의 형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을 oiJ ejk peritomh'"라고 표현한다 (행 11:2; 골 4:11). 그 외에도 단어 "할례"는 할례 받은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갈 5:6; 6:15; 유사한 예: 롬 2:25, 26; 고전 7:19).

3) 갈라디아서 5:2-12 (peritevmnhsqe 2절, peritevmnomenw 3절, peritomhv 6절, 11절)

바울은 구원을 위해서 율법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고 율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oiJ uJpo; novmon qevlonte" ei\nai 4:21)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야기를 한다 (4:21ff). 이삭은 성경을 따라 난 자요, 약속의 자녀로서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비록 이름은 거론 되고 있지 않지만 이스마엘은, 반대로 육체를 따라 난 자로서 율법을 의미하는 시내산이자 계집 종인 하가에게서 태어났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과 마찬가지로 자유하는 여자인 사라의 후손이므로 (31절), 율법을 수용함으로써 종의 신분으로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5:1).

이어서 5:2에 할례 이야기가 나온다 (o{ti eja;n peritevmnhsqe). 바울은 종의 멍에를 (zugov" douleiva") 메는, 다시 말해 구원을 위해 율법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행위로서 할례를 거론하고 있다. 율법과 그리스도는 서로 공존할 수 없으므로 (갈 3:23-27; 4:1-7; 롬 7:4; 빌 3:9), 율법적인 삶을 살 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외적 표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할례를 만일 갈라디아인들이 받게 되면,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갈 5:2). 그리고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ajnqrwvpw/ peritemnomevnw/ 3절), 할례를 받았다는 의미는 율법의 계속적인 유효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므로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선언한다.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이방계 그리스도교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8). 이방인이며 팔레스타인 본토에서 살고 있지 않는 그들로서 율법을 모두 다 지킨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린도전서 5:9f를 고려할 때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라는 표현은 현실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율법이란 모두 지킬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음으로써 율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역할을 한다. 그들은 결국 율법 안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인데, 그 결과는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갈 5:4). 그리스도인이란 영에 의해 인도되는 존재이며 (참고 5:16, 25) 믿음으로 온전한 의가 이루어 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로서 (5:5) 그리스도 안에서 (ejn Cristw'/) 세상적인 모든 구별이 지양(止揚)된 새로운 피조물이다 (kainh; ktivsi" 6:15; 고후 5:17).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할례를 했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참고 갈 2:16,20b) 것이다 (5:6).

7절 이하에서 바울은 신앙 생활을 잘 하던 갈라디아인들이 나중에 들어와 전체 반죽에 누룩처럼 퍼진 대적자들의 꾐에 (hJ peismonhv 8절) 빠져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갈라디아 교인들이 결국에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10a절) 요동케 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10절). 바울은 할례의 유효성을 계속 견지하는 복음을 선포했더라면,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1a절). 율법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유대인들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전한 (바울을 포함한) 이들을 박해했다는 내용은 바울 서신 중 갈라디아서 4:29 (ejdivwken), 데살로니가전서 2:15 (ejkdiwxavntwn)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바울은 그와 같은 고난을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사도직을 위해 (고전 4:9-10; 고후 6:3; 12:9f; 빌 3:10)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Peristasenkatalog 고전 4:11-13; 고후 4:8-11; 6:4-5; 11:22-29).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증거하는 것은 율법의 유효성을 옹호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배타적인 관계에 의거해 볼 때, '십자가의 거치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갈 5:11b; 참고 고전 1:22ff). 그리고 마지막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지체를 잘라 버렸으면 좋겠다는 ( [Ofelon kai; ajpokovyontai oiJ ajnastatou'nte" uJma'") 과격한 의견을 피력한다 (12절). ajpokovptein을 라틴어 성경 Vulgata는 abscindantur로 ("분리, 근절되다") 번역함으로서 그 의미를 완곡하게 바꾸었지만 본래 의미대로 "거세하다"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갈라디아 지역에는 아티스-, 키벨레(Attis-, Kybele)제의가 있었는데, 이 종교적인 의식 중에 제사장들은 황홀경 상태에 빠져서 스스로를 거세하는 풍습이 있었다. 바울은 이같은 관습에 빗대어 할례를 요구하는 자들은 그 지체가 제거되는 것처럼 (katatomhv 빌 3:2) 공동체로부터 제거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참고 신 23:1 = 23:2[LXX]).

4) 갈라디아서 6:12-15 (peritevmnesqai 12절, 13절; peritemnovmenoi 13절, peritomhv 15절)

갈라디아서 6:11-18은 보통 바울의 친필로 쓴 '추서'라고 일컬어진다 (참고 11절). 여기서 바울은 다시 한번 대적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로서 갈라디아인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ajnagkavzousin ... peritevmnesqai 6:12a). 그들이 할례를 권유하는 이유는, 바울에 따르면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2b절).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신명기 21:23에 의거해 유대인들은 그를 저주 받은 자로 여겼다 (참고 갈 3: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때 (고전 1:18; 1:23), 그 복음의 내용은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것이었으며 (to; skavndalon 갈 5:11; 고전 1:23; 참고 롬 9:33a) 부딪치게 되는 돌과 같은 것이었다 (oJ livqo" tou' proskovmmato" 롬 9:32f). 따라서 바울 및 그의 추종자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나 멸시, 더 나아가 박해까지도 받게 되었다. 바울 복음의 내용이 정통 유대인들에게 금지옥엽처럼 여겨지고 있는 율법까지도 괘념치 않는 것임을 전제할 때, 유대인들의 반감은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것이었다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11:26 "동족의 위험"; 살전 2:14f "저희[즉,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 유대인들은 ... 우리를 쫓아내고"). 이러한 맥락에서 갈라디아 지역에 나타난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곳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도록 함으로서 그리스도 복음에 내재해 있는 거치는 요소로 인한 박해를 피해보려고 했는데, 이를 바울은 비난하고 있다 (갈 6:12b). 바울에 따르면 할례를 받은 (oiJ peritemnovmenoi aujtoi;) 대적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 자들로서 다만 사람들을 할례 받도록 함으로서 (qevlousin uJma'" peritevmnesqai) 이를 통해 자랑하고자 한다 (13절). 그러나 바울은 어리석어 보이고 거리끼는 것인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한다 (14a절). 바울 자신은 예수로 인해서 더 이상 세상적이지 않는 그런 삶을 산다고 강조하면서 (14b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들에게는 더 이상 할례(peritomhv)나 무할례(ajkrobustiva)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15절).

2. 바울의 '할례'이해

바울은 빌립보 3:5에서 자신은 낳은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로마서 3:1f에서도 할례의 유익(wjfevleia)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로마서 4:12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바울은 할례를 유대인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준수하면서 살기를 내외적으로 천명하는 의미를 지닌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상징하는 할례에 대한 거부감을 바울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에서는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대체적으로 할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곳 교회에 들어온 친유대적인 성향을 띈 바울의 대적자들이 그의 복음을 논박하면서, 율법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례의 유용성을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서신에서는 할례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0:45에서 oiJ ejk peritomh'" pistoi;는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하지만 갈라디아서 2:12에서는 그런 표현 대신 (pistoiv가 빠짐)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을 oiJ ejk peritomh'"라고 기술한다 (행 11:2; 골 4:11). 로마서 3:30에서는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라고 언명함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할례자도 믿음을 통해 구원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할례는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는 (롬 4:11) 어느 정도 긍정적이며, 믿음과 관련시킨 표현도 본 서신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또한 할례자들의 조상으로도 인정하는 (롬 4:12) 여유 있는 태도도 갈라디아서에는 없다. 그리스도가 "할례를 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다는 표현도 (롬 15:8 표준 새번역) 나오지 않는다. 빌립보서 3:3에서 믿는 자들을 "할례당" (hJmei'" ... ejsmen hJ peritomhv)이라고 함으로서, 유대인을 지칭하는데 쓰이는 단어 '할례'가 더욱 광의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할례당'이란 진리 안에서 할례를 받은 (실제 할례를 받았다는 뜻이 아님) 약속의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이처럼 상징적이며 영적인 의미로 사용함으로서, 할례의 의의를 계속 유지하려는 어떤 노력이나 징후도 엿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갈라디아에서 바울이 '할례'에 대해 단호하고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그 교회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이 서신에서 단어군 "할례"는 일반적인 의미로 유대인을 지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2:7, 8, 9, 12)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지 않은 어감으로 사용된다. 이방인 디도에게 할례는 억지로 받도록 강요되지 않았다 (2:3). 할례는 종의 멍에를 메는 것에 비견되는 것으로서, 받게 되면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아무런 유익이 없게 되며 (2:3f; 5:1f), 그때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5:3; 참고 6:13). 바울에 鯁르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것은 "믿음", "의", "희망", "사랑" 같은 것이지, 할례를 받고 안받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5:5f; 6:15; 참고 고전 7:19a).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비록 박해를 받더라도 '할례'를 선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5:11; 참고 6:12). 마치 불량 식품을 만들어, 자신은 먹지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사서 먹으라고 떠들어대는 악덕 상인들처럼,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할례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대적자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6:12f; 참고 5:12). 바울은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함으로서, 자신들의 치적을 과시하며 자랑거리로 삼으려고 한다고 그들을 질책하고 있다 (6:13).

V. 나오는 말

제임스 던은 자신의 저술에서 음식과 관련한 정결법, 안식일법 그리고 경건의 훈련 등을 거론하면서, 무엇보다도 금식이나 자선 행위가 이방 세계에 대해 유대인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identity markers') 지적하였다. 신약성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예수는 이 identity marker 중의 대부분 것에 대해 (안식일법, 정결법, [위선적인] 금식이나 자선행위 등)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하지만 특별히 포로기 이후 그 의미가 강조되어 온 할례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시시비비로 삼으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반해 바울은, 특별히 갈라디아서에서 율법 뿐 만 아니라 할례까지도 거부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였다. 바울은 6장으로 된 이 서신에서 특별히 할례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선교한 지역에 나중에 들어와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믿음 뿐 만 아니라 율법의 준수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례 받을 것을 종용했던 대적자들 때문이었다.

바울은 그들의 유혹에 넘어간 갈라디아인들을 어리석다고 질책하면서 (3:1, 3), 구원의 길로서 '믿음'을 강변한다 (3:2-5; 참고 2:16-21).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이 '믿음'은 다시 한번 강조되며 (3:6-14), 약속이 율법보다 우선적이라는 사실과 (3:15-18) 율법의 제약성과 한계성을 언급한다 (3:19-29). 4장 이하에서도 계속 "우리는 이제 율법 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할례에 대한 언명은 이같은 율법에 대한 비판과 그것의 무용성에 대한 논구와 더불어 나타난다. 바울은 여기서 한편으로 대적자들의 정체를 폭로하면서 논쟁적으로 진술하여 간다: 저들은 할례를 받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고 다만 사람들을 할례 받게 해서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으려 하는 자들이다 (6:13).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할례를 받고자 하는 갈라디아인들을 직접 설득하고 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전체 율법을 지키며 살겠다는 의미이다 (갈 5:3; 6:13; 참고 롬 2:25; 집회서 44:20).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할례가 아니라, 믿음이 중요하다 (갈 2:3; 5:2, 4, 6, 11). 바울은 더 나아가 '할례'를 이용하여 자신과 대적자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할례를 통해 자신들을 자랑하고자 한다 (6:13). 하지만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는다 (14절). 그들은 할례로 육체의 모양(12절)으로 삼지만, 바울은 예수의 흔적 (17절) 만을 내세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율법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효력을 잃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종말론적인 구원사건을 단지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보편성("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과 무조건성("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에 근거해 볼 때, 지금까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해 주었으며, 일종의 '율법의 행위' 역할을 수행한 할례는 더 이상 구원론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바울의 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와 율법과 할례를 강조한 친유대적인 노선의 대적자들로 말미암아 그 곳에 보낸 편지(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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