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자녀교육

요즘처럼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심각한 사회적인 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는 적이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산층의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 있고 이민 갈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십 년만 젊었으면"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그 까닭은 "십 년만 젊었더라면 이 나라에서 안살고, 이민을 갈 텐데 ..."라는 것이다. 이민을 가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자녀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힘들게 과외시켜 대학교를 보내는 일이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또 고생 고생 끝에 암기식, 주입식 교육과정을 거쳐 대학에 보낸 (간) 이후에 대입이 과연 그만한 수고와 노력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되며, 또 목표를 달성 후에도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영어'문제는 입학생들에게 계속 숙제로 남는다. 이런 저런 이유와 여러 고려 끝에 이민 또는 자녀들을 조기 유학보내고 있는 부모가, 혹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는 조기유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계속 남아 있는 학생들은 마치 열등생(?)이라는 느낌마저 든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있는 자녀를 낯선 외국을 보내자니 마음이 않놓여 부모 중의 한 쪽이 (주로 어머니가) 따라가 돌봐주는 까닭에 아버지는 이 땅에 남아 돈벌어 송금하고 나머지 가족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공부시키고 한단다. 이처럼 교육문제로 인한 한국의 현대판 이산가족이 숫자가 꽤 된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고생과 불편을 감내하면서 자녀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며 동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땅 좁고, 그나마 변변한 자원도 없이 인구만 많은 우리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대학이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논팔고 소팔아서 까지 자식들을 공부시켰던 이 땅의 부모님들이 가졌던 교육열 때문이였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나 이의를 달 수 없으리라.

요사이 신문, 방송매체를 살펴보면 교육을 테마로 한 기사가 자주, 그리고 대부분으 경우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한다.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하나같이 현행 교육제도에 대해 매우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녀들을 적게 낳는 급격한 소가족제도로의 이행에 따라 이제 자식은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한 둘 밖에 없는 정말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부모들은 모든 자녀들을 가능하면 상급의 교육기관에까지 진학을 시키려 한다. 산업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사회가 점점 잘 짜여져, 의외성이 없어진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첫째한 사람이 사회에서 꼴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교의 성적과 사회에의 성공은 별도의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교육을 받아 전문 지식이 있거나 이에 준하는 자격증을 각 해당분야에서 전제로 요구하고 있다. 요즘은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그런 때이다. 또한 우리는 싫던 좋던 간에 경쟁의 범위가 '국내' 뿐 아닌 '세계'로 넓어진 때에, 소위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제 '교육'이라는 문제는 한 학생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모든 부모는 이를 실감하고 자식들에게 (가능하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양질의 교육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교육 환경이나 제도는 이런 희망사항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불만이 매우 높은 것 같다.

교육은 네 가지의 주체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교당국과 학교, 학부모 그리고 교육을 받는 학생이다.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불만은 정부와 문교당국에 일차적으로 그 책임의 화살이 돌려져야 하겠다. 이들을 빼놓고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우리의 공교육이 불신을 당하게 된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권위주의적이거나 상명하달식의 의사결정, 전체적인 마스터 플랜이 없는 뗌질식의 혹은 현실에 기초하지 않는 탁상공론식의 계획들, 관련업자들과의 밀착 또는 업자들의 로비에 의해 그들의 이익이 반영된 사업을 채택하거나 일을 처리, 보신주의, 조삼모개의 정책진행 등등 지금까지 정부나 문교당국이 저지른 (?) 죄는 하나 둘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가장 큰 원죄는 교육을 교육의 문제로 순수하게 보지 않고 통치의 일환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정부는 교육분야를 통제하고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발휘하려 했고, 이러한 관행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나 문교당국은 납세를 통해 자신들에게 일자리를 준 사용자들의 (국민, 학부모, 학생) 입장에서 교육의 문제를 진지하게 처음부터, 그리고 근본에서 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올해의 고 3은 단군이래 최저의 학력을 가진 수험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이들과 경쟁하여 이득을 보려고 올해 초 재수를 결심한 졸업생들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현 고 3의 학력이 저하된 원인으로 이해찬 전교육부 장관을 거론해야 한다. 구구한 설명은 생략하고 현 고3 학생이 얼마 전 내게 보낸 메일을 소개한다.

얼마전에 신문보셨겠죠? 모의고사 폐지 + 수능 최고 37점까지 어려워진다고 해요. 지금 학교와 학원에서는 비상걸렸어요. 수능이 어려워지는데 그걸 연습할 모의고사를 전혀 못보게 한다니 말이예요. 또 저희 학년부터는 이해찬 세대라고 해서.. 잘 모르시겠다. 3 년전 이해찬씨가 교육부장관 맡고 있었을때 교육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다뜯어 고쳤었던 일이 있었거든요. 현실과 맞지 않는 교육정책으로 무시험전형이라는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제도두 있어서 고1때 저희는 그냥 대학가는줄 알았어요. 또 수행평가라구 해서 교과목 외에 엄청난 활동들을 시켰었죠. 그리고 저희 때부터 야간자율학습도 금지됐었고 보충수업이라는 것도 없었죠. 그래서 저희가 최악의 성적을 자랑하는 세대래요. 또 바뀐 제도에 대한 희생양은 처음에 당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무시험전형은 아마도 수시모집이라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내신이 따라주어야 지원을 해보던지. 설사 붙었다하더라도 면접+구술을 잘 준비해야하고 그런데 떨어지면 그만큼 공부할 시간을 잃어버려 더 큰 손해가 따르구. 이래저래 부딪히는건 벽밖에 없네요. 에구.. 이제 8개월 남았다고 난리들인데. ....... 야간자율학습을 직접하니까 은근히 재밌는 일이 많이 생겨서 할만해요. 가끔씩 저녁급식이 모자라 밥을 못먹는 일이 생기면 그 핑계대구 집에 가기두 하구. 히히 몰래 도망가는 애들 걸려서 기압받는것두 재밌구.

어떤 면에서 전 참 느긋하죠? .......

이 지면을 통해 이 전장관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계획을 수립하려면 전체가 공감하는 그런 계획을 제대로 잘 만들어야 할 것이고, 또 정책이 세워진 후에는 (장관이 바뀌더라도) 수험생들이나 학부모, 그리고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혼란이나 혼돈을 느끼지 않토록 일관성있게 그것을 실행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을 안깨운다고 한다. 공부는 상급학교 갈 가능성이 있는 20% 전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 나머지 아이들이 떠들지 않고 자주면 오히려 선생님과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오히려 자라고 교사가 권한다고 한다. 공교육의 공교육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만 '일부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이라는 목적 만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전락해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예이다. 신문에 어느 교사가 한탄을 하며 쓴 기사를 보았다. 6학년 담임인 이 분에게 한 학부형이 전화를 걸어 하는 말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되니 4교시 끝나고 다른 아이보다 일찍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여서 같은 급우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라도 더 간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그 청을 거절했더니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와서 "다른 아이들과 중학교 과정을 미리 공부시키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빠지면 그 애만 처지게 되니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였다. 결국 교사는 그 아이를 일찍 귀가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동료 교사들에게 확인해 보니 다른 반에서도 이런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생님들로 부터 교사로서의 숭고한 직업의식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들을 위해서 '교사를 위한 기도'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일부를 여기 소개해 본다.

....

당신은 우리 중에서 어떤 이들을 가르치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떨립니다.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학생들을 지배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오, 주님!

우리를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자신의 자아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많은 학생들을 실망시키는 관료적인 장애물들,

직업을 얻지 못한 이들에겐 역시 잔인한 약삭 빠른 경쟁사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그 새로운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를 의지하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깊어지게 하시고,

교육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

학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성서에서는 자녀교육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까? 우선 자식의 소중함을 시편 127,3ff에서 말하고 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이 말씀은 자녀를 귀하게 여기는 우리 한국적인 정서와 일맥상통하면서 익히 공감하는 그런 말씀이다. 한편, 성서는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권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 3,21)". 골로새서의 기자는 자식을 양육하고 좋은 것으로 지도하되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않된다고 한다. 여기서 기자는 아이를 현대 심리학적인 방식으로 관찰한다. 즉, 강압적인 교육방식은 아이들로 하여금 '용기'나 '자기됨'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식에게 가장 좋은 교육의 방식은, 마치 바울이 고전 11,1이하 에서 고린도 교회에 자기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 처럼, 부모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전 11,1f)". 부모 자신들은 늘 TV나 비디오를 보면서 자식들에게는 "너희는 공부 만 하라"고 하면 그 부모의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부모 스스로가 일상 생활 가운데 성경을 비롯한 여러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그 가정의 아이는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공부를 즐겨 하게될 것이다.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은 부모는 지식에 앞서 '지혜'를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성서는 '지혜'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전 4,13)". 솔로몬이 위대한 왕이요 많은 축복을 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왕상 3,5ff). 그런데 지혜 중에서도 으뜸인 지혜가 있는데, 이는 다름아닌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분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라고 성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시 111,10; 참고 잠 1,7; 9,10)".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아래 구절들은 쓰여졌다: "너는 청년의 때 ...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 12,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9)".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 '지혜'는 안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 (고전 1,18)". 하지만 우리 신앙을 가진 부모들은 "꺼리고"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는 점을 (고전 1,23ff) 믿고 있다. 따라서 이것부터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또한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자녀들은 아래의 말씀처럼 올바른 신앙인으로 양육되고 교육될 것이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게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니라 (딤후 3,14ff)". 또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이 있는 자녀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부모에게 예를 지키며 효도하는 귀한 자녀로 성장할 것이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권한다 (골 3,20)".

우리는 교육담당 부처인 교육부가 전문가들의 의견과 교사들, 학부모들 그리고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하여 긴 안목을 가진 일관성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고 비판적인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선의 학교당국이나 교사들은 무기력감이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기에 급급하지도, 안주하지도 말며, 교직에 대한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고 학생들을 대해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신앙을 가진 학부모들 만이라도 넓은 시야를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도야 어떻든 내 자식만 좋은 성적을 얻으면 된다든가, 자기 자식의 눈으로 만 교육제도를 평가하지 말고 전체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폭넓고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부모들은 제 자식이 자신의 분신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위에서 인용한 시편 127편에서 처럼 자식은 하나님이 준 선물이지 '또 다른 내 자신'이 아니다. 자식을 못 다한 내 꿈을 이루는 도구로 봐서는 않될 것이다. 자식을 온전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으로 존중하면서 그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에게 어떤 남다른 재능을 주셨는지를 살피고 그 재능을 잘 살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그를 잘 인도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