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화면으로 첫 화면으로
유대기독교와 헬라기독교 (행 6)



들어가면서

F.C.Bauer가 (1792-1860) 신약학에 미친 영향 중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한편으로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두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바울의 역사를 위한 자료로서의 사도행전을 비판하며 그 한계를 지적한 점 (Paulus, der Apostel Jesu Christi, 1845, 1.Teil) [참고, '열린연구' '사도행전'편 "사도행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중 "행에 나타난 기독교와 유대교의 대립완화 문제"], 2. 바울의 신학적인 핵심으로 반유대교적인 교리로서의 의인론을 제시한 것 (Vorlesung ber Neutestamentliche Theologie, 1864 128-230).

특별히 그는 두 번 째 지적에 근거하여 "유대교↔의인론 = 유대인↔이방인"라는 도식으로 초대교회사를 이해한다. 즉, 바우어에 따르면 초대교회사란 간단히 말해 친율법적인 성향의 팔레스티나 유대인 중심에서 이에 반대하는, 의인론을 근거로한 헬라지역의 유대인 내지 이방인 중심으로 축이 이동된 것이다.

물론 '바울이후의 초대기독교사'에서 일부 지적한 대로 '열린연구'는 엄밀히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바우어식의 우선 유대인 먼저, 그리고 (헬라출신의)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일률적인 도식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복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유대인, 헬라출신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에게 전파된다고 봅니다 (참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것"으로 자신의 소명을 이해합니다. 그의 사도로 부름받음은 예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바우어의 시각은 넓게 볼 때, 아직까지도 초대교회사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가 강조한 유대기독교 (주로 유대인으로 구성)와 헬라기독교의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 구분은 신약성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에는 특별히 행 6장의 7안수집사를 세운 구절을 가지고 유대기독교와 헬라기독교에 대해 살펴봅니다.

본말

초대교회는 먼저 행 1,4에 에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오순절 사건과 이에 따른 제자들의 전적이고 열렬한 복음증거를 통해 많은 신자들을 이곳에서 얻습니다 (행 2 이하). 그런데 6장에 따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약간의 문제가 일어납니다.

즉 제자의 수가 많아지는 와중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들의 과부들이 교회가 매일 베푸는 구제에서 빠지게 된다면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구제활동을 전담하는 일곱 집사를 뽑고, 12 사도는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힘을 씁니다. 그래서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됩니다 (7절). 얼핏 보기에는 별 특별한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이 구절은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특별한 점은 초대 교회 내에 두 그룹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이 바로 그들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팔레스티나 지역이 아닌 다른 곳, 즉 이집트라든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그리스 지역 등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마치 일제 치하에서 생활이 피폐해지고 도탄에 빠졌을 때 우리 선조들은 고향을 떠나 연해주나 만주로 일본으로 심지어는 하와이나 멕시코까지 가서 정착하고 살았듯이 그리고 해방 후에도 아직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이나 아니면 유럽으로 와 살게 되듯이 당시 이스라엘인들도 유사한 처지에 처합니다.
     팔레스티나는 BC 330 년 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점령됩니다. 그가 죽자 그의 대 제국이 넷으로 나누어지는데, 팔레스티나는 시리아 지역을 차지한 셀류커스 왕조와 이집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프톨레메이우스 왕조 사이에 위치한 전락의 요충지가 됩니다. 그 결과, 팔레스타나는 두 왕조의 정치적인, 군사적인 야욕 때문에 여러차례 전 국토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에 의해 점령됩니다.
     이 같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 백성들 중의 많은 이들이 나라를 떠나 지중해 연안의 전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이들을 다른 말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디아스포라"란 흩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면서도 자기 조상들의 가르침, 율법과 규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곳곳마다 회당을 짓고 여호와의 신앙을 계속 간직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히브리말이나 아람어가 아니라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라어 즉 그리스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들이 보는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성경이 아니라 그리서어로 번역된 소위 "70인 역"이라고 하는 (셉투아긴타) 성서입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면 우라는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닷소, 즉 지금의 터기 남부, 시리아와 면하고 있는 지중해와 가까운 곳, 츨신입니다. 아마 그의 부모나 조상이 일찌기 전쟁의 참화를 피해 고향을 떠나 그곳에 와 정착했고 바울은 닷소에서 헬라어로 교육을 받고 헬라사상을 배웠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성향을 보변, 물론 바울처럼 전통에 충실하고 율법의 의로도 흠이 없는 (빌 3,6) 이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율법의 세세하고 문자적인 규정들로 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운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인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을 이해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수를 대략 400-600만 명으로, 그리고 팔레스티나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를 대략 100-200 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의 3명 중 2명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였습니다. 외국에 살고 있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유대의 큰 종교적인 명절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생의 마지막을 약속의 땅, 메시아가 장차 올 곳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거룩한 시온 성 예루살렘에서 보내고 거기에 묻히기 위해 재산을 팔아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기도 있습니다. 마 27, 7 이하에 보면 가롯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값으로 받은 은 30 냥을 성소에 다시 반환하고 죽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이 돈을 어찌 처리 할 까 고민하다가 결국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구절이 말년에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 묻히고 싶어했던 그런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행 6,1 에 나오는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바로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아마 순례 여행이나 아니면 이주를 통해 예루살렘에 와 있던 혹은 살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 초대 교회의 교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초대 교회는 크게 두 그룹, 즉 유대 본토 출신인 히브리 유대인과 헬라 출신인 헬라파 유대인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읍니다. 그런데 이 두 파 간에 문제가 생깁니다. 헬라 출신 유대인들 중 특별히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 7 집사가 선출됩니다. 이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헬라 이름이고 특별히 그들 중의 하나인 니골라는 이방인으로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출신이라고 하는 것을 봐서 7 집사는 단순히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구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 만을 담당한 자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핏 생각해 봐도 당시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힘은 12 사도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본토 출신 히브리파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헬라 출신 과부들 만이 구제에서 빠지게 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증거일 것이고 또한 12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요, 오순절 사건을 통해 직접 교회를 세워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부가 구제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7 집사를 세우고 나서 12 사도들은 더욱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했다고 하는 것을 봐도 이들이 명실 상부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나 추측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3절이나 5절에서 보듯이 7 집사들은 모두 믿음과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고 특별히 8절 이하에서 보듯이 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스테판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큰 가사와 표적을 행하며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토론하기도 하고 공회 앞에서 복음을 변론하고 증거하다가 순교당했습니다.
     그의 동료인 빌립은 행 8장에서 사마리아 전도을 하며, 특히 행 21,8 이하에서 행의 저자는 그를 "전도자" Evangelist 라고 칭하는 것들로 미루어 봐서, 그리고 11,19 이하에서 이들이 후일 이방인 전도의 주역이 되고 있다는 여러가지 점들을 비추어 볼 때 7 집사들은 단순히 오늘날의 집사라는 의미와는 다른 거의 12 사도와 동등한 역활을 했고 비중이 있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2 사도가 팔레스티나 본토 출신들의 지도자였다면 7 집사는 헬라 출신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이들 헬라 출신 유대인들은 본토 출신 유대인들과는 달리 종래의 유대교적인 전통이나 율법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이였고 자유로웠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의 율법비판 정신에 본토 출신 유대 기독교인들 보다 더 가까이 서 있었고, 더 잘 예수님의 복음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가 세세한 안식일 규정을 통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인간에게 쉼을 허락하시고 은총으로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주신 안식일의 원래 의미를 잃어 버렸을 때 예수님은 과감히 이를 거부하고 그 당시 안식일 법에 금지되어 있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잘 이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 예루살렘에 오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하신 말씀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올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 지리라" (막 13,2)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시면서 유대교의 가장 근본이요 그들 신앙의 기본인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비판하시는 그 의미를 잘 이해했습니다. 성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사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가짐이, 자세가 중요함을 그들은 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하나님과 인간 간의 우주적인 화해의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이해하기 보다는 주님으로 (Lord, Herr, kyrios)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구원을 위한 모든 전제들이 사라졌다고 이해합니다. 즉 할례, 율법으로 부터 자유로운 신앙, 믿음을 통한 구원 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런 자유사상 때문에 그들은 즉시 유대인들로 부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 쫓겨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헬라 전 지역으로 점차 퍼져 나가면서 이방인 선교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이에 비해 본토 출신 유대인들은 유대교라는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헬라출신 유대인들처럼 그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이해합니다. 예수는 구약이 기다려온 메시아이시고 그의 십자가 위의 희생으로, 자신을 제사제물로 바침으로 새로운 하나님과 인간 간의 새로운 계약이 맺어졌고 이 계약 준수를 위해 계속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토 출신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사고는 유대교와 기독교간의 상호관련에 기여합니다. 즉, 기독교가 계속 유대교 내에서 존재하도록 하며, 이들 전도자들은 회당을 계속 이용하면서 유대인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합니다.

(유대기독교와 헬라기독교 (행 6) 2000.02.20 -끝-)

첫 화면으로   목록 화면으로  맨위로